■ "옆집은 엄마가 없대" 32만가구 가슴 '피멍'
이모(46)씨는 2년 전 아내와 헤어진 직후 10년 넘게 정든 직장을 그만뒀다. 밤샘작업과 출장이 잦은 토목설계 일을 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돌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건축관련 영업 일을 하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현재 그는 평생직업을 찾고 있다. 아들이 혼자 밥을 챙겨먹을 나이가 된 데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린 탓이다. 토목설계로 잔뼈가 굵었으니 잘만 하면 자리를 구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한 면접관의 한마디가 마지막 남은 이씨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가정도 못 다스리는 사람이 회사생활을 어떻게 하겠다고…."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픈 말이었고 홀아비라는 편견이 그리 무서운지 몰랐다. 왜 우리 같은 싱글대디를 죄인 취급하느냐"고 푸념했다. 이씨는 경제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자신감도 점점 떨어진다고 고백했다.
'나 홀로' 자녀 키우기는 부자(父子)가정이나 모자(母子)가정 모두에게 어렵지만 스트레스의 강도는 싱글맘보다 싱글대디가 훨씬 세다.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아이를 씻기는 등의 소소한 일부터 아이의 성장에 따른 지도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엄마처럼 살가운 교감도 서투른 터라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막막함은 배가된다. 일반 가정의 아버지처럼 경제력을 갖추면서 어머니 노릇도 해야 하는 싱글대디는 두 역할 모두 잘 해내지 못한 패배감에 좌절한다.
11년 전 이혼한 싱글대디 오모씨는 함께 사는 외아들 생각에 가슴이 아리다. 올해 고교2학년이 됐어야 할 아들은 1년째 등교를 거부한 채 방에 박혀 컴퓨터게임만 하고 있다. 이혼 당시 7세였던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문제를 드러냈다. 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한동안 학교에 다녔지만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학교생활 부적응이 원인이었다.
오씨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려 해도 아들은 "지금이 좋으니 내버려두라"고 입을 닫기 일쑤다. 그는 "엄마의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 것 같다. 아들 마음의 상처를 헤아리지 못해 이렇게 된 것 같아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아이가 많거나 장애아가 있는 싱글대디는 주변 도움 없이 단 하루도 일상을 누릴 수 없다. 15, 12세 두 아들을 둔 황모(44)씨는 정신지체를 앓는 둘째를 위해 가사도우미 비용만으로 매달 140만원을 쓴다. "마음 같아선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재택근무로 바꾸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월급쟁이라 버는 건 한계가 있어 빚만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제적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싱글대디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2000년 부인과 사별 후 아들 셋(16, 13, 9세)을 키우는 서울의 한 중소유통업체 사장 김모(46)씨는 마음 편히 가족 외식을 하는 날이 없다. "저 집은 엄마도 없나"라는 수군거림과 이상한 눈초리가 아이들에게 닿을까 봐서다. "사업차 사람을 만나도 가족얘기가 나오면 말문이 막혀요. 어느 날은 막내가 울면서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 당했다고 하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어요."
경제적 어려움과 힘에 부치는 자녀양육,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싱글대디의 자화상이다. 싱글대디 가정은 31만 가구(통계청 조사ㆍ2009년 기준)를 넘어섰는데, 싱글맘 가정보다 두 배나 빠른 증가추세다. 그러나 사회적 배려는 전무하다 할 정도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가사·양육 서툰데다 애들 일탈행동 많아 더 '마음고생'
2009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한부모가정은 약 147만 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싱글맘의 모자(母子)가정은 116만여 가구(79%), 싱글대디의 부자(父子)가정은 31만여(21%) 가구다.
최근에는 모자가정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부자가정은 특성상 모자가정과는 엄연히 다른 데도 '한부모가정'이라는 틀 속에 한데 묶여 상대적으로 관심 밖이다. 인원이 많고 상대적으로 약자로 분류되는 싱글맘이 주로 보살핌을 받는 사이 싱글대디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전 직장이 사정상 월급을 못 줘 결국 그만두고 일을 구하고 있는데, 아이를 돌봐야 해서 정시에 출퇴근하는 일이나 야근은 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버는 돈을 다 가사도우미 쓰는데 쓸 수도 없고."(싱글대디 A씨)
싱글대디의 첫 고민은 가사(家事)다. 싱글대디는 보통 가사에 적극적이지 않다가 이혼ㆍ사별 등으로 갑작스레 집안일을 떠맡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사에 그만큼 서툴고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씀씀이가 크고 계획적이지 못해 싱글맘보다 많이 벌어도 실속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싱글대디가 싱글맘보다 소득이 높지만 꼭 필요한 곳에만 소비하는 싱글맘과 달리 싱글대디는 서투른 집안살림을 가사도우미 고용 등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더 많은 지출을 한다"고 말했다.
집안살림 및 자녀양육과 직장병행이 어려워 정규직을 포기하고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옮기는 싱글대디도 있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 통계청에 따르면 한부모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양부모가정(370만원)의 60%수준(224만원)이다. 싱글대디든, 싱글맘이든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자녀양육도 싱글맘보다 고충이 크다. 싱글맘에 비해 섬세함이 모자란 데다 우리사회의 직장 여건상 귀가가 늦는 경우가 많아 자녀양육에 더 애를 먹는다.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황은숙 회장은 "가정폭력의 약 50%가 부자가정에서 일어날 만큼 아버지들이 자녀들에 대한 양육에서 미숙한 면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아이들 정서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미친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한부모가정에 놓였을 때, 모자가정보다 부자가정에서 일탈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고명석 명지대사회교육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사춘기 때 모성에 의한 심리적인 안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체로 충동적인 성향이 강해진다"며 "실제 청소년보호감호시설에서 만난 아이들 중 80% 이상이 부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처지가 알려지는 걸 꺼리는 것도 싱글대디의 특성이자 괴로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싱글맘은 인터넷카페나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육아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거나 고민 상담 등을 하고 있지만 무뚝뚝한 싱글대디들은 이런 네트워크 형성 자체를 기피한다. 직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알려서 지원이나 양해를 구하기보다는 숨기기 일쑤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박모(43)씨는 "괜히 못난 놈 취급 받을까 봐, 알려봐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 경제와 주거문제를 제외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싱글맘은 자녀양육 부담감을 꼽은 것과 달리 싱글대디는 본인의 심리적ㆍ정서적 고통과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꼽았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부자가정 실태/ 月 소득 평균 224만원 양부모가정의 60% 수준
부자가정에 대한 총체적 실태조사가 따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으나 소득수준과 빈곤 정도 등 대강을 유추해볼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자가정 31만5,447가구 중 극빈층(기초생활수급자)은 모두 2만1,115가구로 전체 부자가정의 6.6%를 차지한다. 또 부자가정의 7%(2만2,532가구)는 18세 미만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가정의 소득실태는 별도로 조사된 게 없었다. 하지만 통계청이 2008년 무작위로 선정한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3만6,635가구 중 한부모가정(5,080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224만원으로 일반가정(3만1,555가구ㆍ평균 370만원)의 60%에 불과했다. 또 빈곤층을 나타내는 중위소득 50% 이하인 가구는 일반가정의 경우 전체의 45%(1만4,356가구), 한부모가정은 전체의 78%(3,968가구)로 일반가정보다 빈곤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또 보건복지가족부가 2009년 싱글맘 129명, 싱글대디 16명 등 총 1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력분포에 따르면 싱글대디의 학력은 고졸(35.7%), 고등학교 중퇴ㆍ휴학(28.6%), 중졸 이하(14.3%), 대학교 중퇴ㆍ휴학(7.1%)의 순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가장은 한 명도 없었다. 싱글맘의 학력은 고졸(35.7%), 고등학교 중퇴ㆍ휴학(23.3%), 중졸이하(14.6%), 전문대 중퇴ㆍ휴학(8.5%), 대학교 중퇴ㆍ휴학(6.2%) 대학교 졸(3.1%) 순으로 싱글대디보다는 학력 수준이 조금 높았다.
또 친족과의 유대에 있어서도 싱글대디는 '일부 가족과 비밀리에 가끔 연락'(50%)하거나 '연락을 끊은'(28.6%) 경우가 많았다. 반면 싱글맘은 모든 가족과 가끔 연락하고 만나거나(30.2%) 모든 가족과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19.8%)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싱글대디는 친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싱글맘은 23.6%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싱글대디의 하소연
'사업실패나 실직, 임금체불과 같이 갑작스럽게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직이나 대출지원 등에서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직장동료와 자녀친구의 부모 등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에서 느끼는 싱글대디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교육도 절실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부모가족 생활안정화 및 자녀양육 지원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 상실, 경제력 약화, 양육부담 증가, 주변의 편견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싱글대디들은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요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바라는 안전망은 크게 각자가 처한 경제력에 따라 나뉘는 모습을 보인다. 정규직 등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는 주로 자녀양육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장치를 요구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녀양육방식에 대한 별도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는 싱글대디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싱글맘과 마찬가지로 가장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안전망은 경제적인 것이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싱글대디 A씨는 "생계를 위해 차량이 꼭 필요한데도,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연봉수준과 차량 유무 등 단순한 조사만으로 한부모가정 지원대상을 정하는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상황이 매우 열악해 관련 시설 등에 거주하는 싱글대디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방법 모색에 주력했다. 시설 거주 싱글대디들은 설문조사 및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자립을 위해 정부가 "4년가량 매달 15만~20만원씩 총 720만~960만원을 저축형식으로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싱글대디는 전반적으로 이혼, 사별 등으로 인한 충격과 상처를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상담 등도 지원받길 바랐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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