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값이 비싸다고 해도 산지 농민들이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추 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기상이변 직격탄으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오히려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해 채소류가 밭에서 썩어버려 출하조차 못한 탓이다. 대도시 소비자들은 배추를 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나, 정작 농민들에게 남은 것은 한숨뿐이다.
27일 농협 강원연합사업단 고랭지채소 사업소에 따르면 강원 지역 고랭지 채소밭 8,000㏊ 가운데 40%가량이 폭염 및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한옥 사업소장은 “해발 1,000m 고지의 기온이 30도가 넘어설 정도로 폭염이 이어져 고랭지 배추 출하물량이 지난해 절반인 45만톤에 그쳤다”며 “이마저도 품질이 떨어져 최근 소매가격이 급등한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태백 매봉산에서 1만㎡(3,300평) 규모로 고랭지 채소 재배를 하는 최모(57)씨는 망가진 배추 밭을 보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 여름 폭염과 잦은 비로 재배물량의 절반 가량을 출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들은 배추 값이 좋아 ‘떼돈’을 벌겠다고 하지만, 산지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폭염으로 콧물처럼 진이 나오는 ‘꿀통병’마저 돌아 올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고랭지 채소 산지인 대관령에서도 무더위에 배추의 밑둥이 썩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최근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비까지 내려 제 값을 받는 채소류의 출하량이 지난해의 절반수준으로 급감했다.
농민들로부터 소위 ‘밭떼기’로 채소밭을 구입해 출하하려던 중간 유통업자들도 큰 피해에 울상이다. 이들은 출하 때까지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부담했지만, 폭염과 잦은 비로 손실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한 유통업자는 “지난해의 경우 3만3,300㎡(1만평)에 30대 분량의 배추를 출하하면 1억원 가량을 벌었지만 올해는 1~2대 분량밖에 건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부산 등 남부지방에서는 4대강 사업이 채소 값 폭등의 ‘주범’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4대강 사업 보상으로 하천둔치 내 채소류 경작면적이 가장 많은 낙동강(2,000㏊) 인근 지역의 재배량이 감소해 가격급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부산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채소값 급등은 집중 호우 등 이상 기후로 인한 영향 탓에 발생한 전국적인 현상”이라면서도“낙동강 하천부지에서 경작을 많이 하는 상추, 배추, 열무, 얼갈이 배추, 시금치 등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경작지 부족의 이유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부산ㆍ경남지역의 경우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적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태백=박은성기자 esp7@hk.co.kr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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