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동남아’란 별명을 끼고 사는 방태식은 5년 동안 취업 원서를 내는 회사마다 줄줄이 낙방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 수술비 빚을 갚아야 하는 등 살길을 궁리하던 그는 자신의 외모를 적극 활용, 부탄 출신 노동자 방가 캬르키란 이름으로 의자공장에 들어간다.
천신만고로 취업을 했다지만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죽마고우 용태(김정태)는 태식이 몰래 담보 잡힌 노래방을 처분해 고향에 내려가려 하고, 태식은 자신의 잘못이 들킬까 좌불안석이다. 태식은 동료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 이주노동자 모임 대표가 된 뒤 그들을 대거 노래방으로 이끌지만 용태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급기야 태식은 의도치 않게 용태와 함께 동료들의 피땀 어린 돈까지 노리게 된다.
이주노동자와 청년실업 문제를 들추며 외모지상주의까지 꼬집는 영화다. 심각해질 수 밖에 없는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데, 마냥 눅눅하지도 어둡지도 않다. 그렇다고 나풀나풀한 웃음으로 부당한 현실을 가리려 하지도 않는다. 재기 어린 웃음이 차디찬 현실을 적절히 묘사하며 인간애의 온기를 전한다.
특히 용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트로트 가요 ‘찬찬찬’의 가사에 담긴 한국적 정서를 전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웃음의 여운을 남긴다. 이 장면에서 용태는 ‘가녀린 어깨 위로 슬픔이 연기처럼 피어 오를 때’라는 가사를 “카페의 여인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슬픔이, 한이, 담배 연기를 통해 나온다”는 식으로 해석하며 너스레를 떤다. 태식이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성기 계열’과 ‘강아지 계열’ 욕을 가르치는 장면도 폭소를 부른다. 이들 웃음기 가득한 장면들 덕에 “동냥은 못해도 쪽박은 깨지 말라”는, 절규에 가까운 태식의 대사에 담긴 제법 묵직한 주제의식이 더 큰 울림을 갖는다.
관객을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만드는, 의미와 재미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영화다. 태식의 마음을 흔드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장미를 연기한 신인 신현빈, 알반장 역을 맡아 빼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주는 인도 출신 칸(그는 지난해 외국인 최초로 KBS1의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을 받았다)의 연기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좋은 영화는 돈과 머리와 시간이 아닌, 진심으로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아이언 팜’과 ‘달마야 서울 가자’의 육상효 감독. 12세 이상 관람가, 30일 개봉.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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