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표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후계자 지위를 획득한 것은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였다. 이미 당 노동당 조직 및 선전선동담당 비서로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그는 이 때부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유일적 영도체계'의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절대권력자인 수령을 중심으로 전 사회를 일원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었다. 김일성 수령과 그의 사상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규정한 '유일사상 10대 원칙'도 김정일의 작품이다.
■ 유일적 영도체계는 1950년대 후반의 종파투쟁, 1960대 후반의 군벌척결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 세력을 제거하고 김일성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사상적ㆍ제도적 장치였다. 북한 문헌(철학사전)에 의하면 '수령의 사상과 명령, 지시에 따라 전당, 전국, 전민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체계'다. 이 체계에서는 김일성 사상과 지도 방침 외에 어떤 견해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회ㆍ문화적으로는 김일성 및 그 가계에 대한 광범위한 개인숭배와 우상화를 초래했다. 오늘날 북한 사회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오늘 열리는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 앞서 북한 관영매체들은 유일적 영도체계의 확립을 강조해 왔다. 노동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전당과 온 사회에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확립해 나가야 한다"며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주장했다. 당 직영 교육기관인 '김일성방송대' 홈페이지에 실린 글은 특이하게 '수령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지 못하면 후계자가 아무리 준비된 인물이라도 진통과 곡절을 겪게 되니 "수령 후계자를 제대로 뽑아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 북한은 44년 만에 열리는 당 대표자회의 목적을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로 규정했다. 후계 문제 외에 선군 체제에 밀려 방치됐던 노동당의 공식기구를 재정비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노동당 정치국의 기능이 되살아 날 경우 정책결정이 보다 유연해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령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이 강조되는 상황이라면 그런 기대는 접을 수밖에 없다. 최근 노동신문의 논설이 "남에게 빌어먹는 경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은 죄악"이라고 한 것도 좋은 조짐은 아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당 대표자회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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