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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법정형량·공소시효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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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법정형량·공소시효와 용서

입력
2010.09.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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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랜 세월동안 익숙해져서 법(法)이라고 하면 '불교에서 가르치는 세상을 아우르는 완전한 진리' 또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계율'이라는 인식이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처음 불교를 접했을 때 불교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는 것에 상당한 어색함이 있었다.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배우고 익혀서 알고 이해하게 되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으로서의 법이 먼저 머릿속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가지의 법을 알고부터 짧지 않은 시간동안 '불교의 법'과 '사회의 법'은 각각 서로 다른 영역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영원한 진리가 가지는 완전성과 성스러움으로 세상과 생명을 구제한다. 그러나 세상의 법은 사람들 사이의 시비와 다툼의 해결에 그 바탕을 두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완전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 법이 가지는 현격한 다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법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법이라는 하나의 이름에 별스러운 충동이나 이질감이 없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법이 성스러운 진리에 근본을 두거나 세상의 시비와 다툼에 바탕을 두거나 간에 관계없이 사람들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목적과 작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법구경에서 설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에만 사라지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이다." 누군가와 원한을 만들게 되면 끝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다치게 하다가 나중에는 그 이유와 원인도 알 수 없고 오직 원한만이 남게 된다. 어느 한 쪽이나 양쪽이 같이 미움과 원한을 버리지 않는 한 끝없는 윤회를 통해 원한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선에서 용서하고 원한을 버리는 것이 안온한 삶과 행복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런 원한의 측면에서 사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정형량과 공소시효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면이 있다. 법정형량이란 어떤 죄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벌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판사나 검사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일정부분 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선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 공소시효는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죄를 논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정형량과 공소시효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이롭게 된 규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극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묻고 무거운 벌을 내려야 하는데 법 규정이 너무 가볍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바라본다면 법정형량과 공소시효는 피해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얼마만큼 죄지은 사람을 미워하고 벌주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기준과 판단을 법과 법원에서 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다만 그 법에 의지하면 된다. 개인의 감정과 원한이 충분히 해소될 만큼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기준과 합의에 수긍함으로써 더 이상의 원한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피해자 입장에서도 법정형량과 시효가 지나면 용서하고 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죄 지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진정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가슴속을 원망과 미움으로 채운 사람이 편안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법이 그만큼 벌주고 용서한다면 함께 용서하고 원망을 버리도록 하자.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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