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중국 고위 관리가 “중국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에 맞서 달러 자산 청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발언하면서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미국 국채 보유국.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6월말 현재 8,437억달러)의 10%만 시장에 내다 팔아도, 달러화 가치는 폭락하고 금리가 폭등하는 등 미국 경제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미국이 올 초 대만에 첨단무기를 판매하기로 하자, 중국 군부 등에서 “미 국채를 팔아서 보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된 것도 그 연장선상. 물론 미 국채 가격이 폭락한다면 중국 역시 그 부메랑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미 국채 매각은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중국에겐 코너에 몰리면 언제든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중국의 ‘경제력 무기화’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굳이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경제력 만으로도 얼마든지 세계 각국을 위협할 수 있는 ‘파워 차이나’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 자금력, 자원, 수입중단, 관세, 관광 등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무기’도 점점 더 다양해지는 양상이다.
일본이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 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분쟁에서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 역시, 무기화된 중국 경제력의 가공할만한 위력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이번에 중국이 일본을 굴복시키는 데 동원했던 카드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단연 희토류(稀土類). 발광다이오드(LED), 하이브리드카 등 각종 첨단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희소금속이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97%)과 매장량(36%)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어,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순간 세계의 첨단공장은 ‘올 스톱’되고 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세계최고의 하이테크를 가진 나라이지만 희토류 없이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었다”며 “이번에 중국은 그런 일본의 급소를 찌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희소자원 무기화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 중국은 희토류 외에 레늄(96.8%) 안티몬(90.9%), 마그네슘(86.6%), 텅스텐(75.1%), 인듐(58.1%) 등에서도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장규 연구위원은 “중국은 틈만 나면 ‘석유는 중동이 가지고 있지만 희소금속은 중국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며 “오래 전부터 희소금속의 전략적 사용을 연구해왔다고 봐야 된다”고 말했다.
워낙 구매력이 크다 보니 수입ㆍ관광 중단 같은 무기도 파괴력을 더해간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나자, 에어버스 여객기 150대 구매협상을 전격 취소한 것이 대표 사례. 이번에 일본을 향해서는 희토류 수출 금지에 더해 관광 금지령까지 내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무역의존도가 3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런 중국의 경제력 무기화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나라도 중국에 경제력 무기화에 혼쭐났던 경험이 있다. 지난 2000년 중국산 마늘수입규제를 위해 고율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영향력 면에서 몇 배나 큰 휴대폰 수입중단으로 맞섰고 결국 우리나라는 백기항복을 해야 했다. 정부 관계자는 “마늘전쟁 당시 중국측 대응은 국제 통상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하지만 그것이 현실인 만큼 우리나라도 희소금속 확보, 수출입 다변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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