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까지 지낸 ‘친박’의 핵심인사가 왜 이명박 정부의 장관직을 맡게 됐을까. 마음은 두고 몸만 온 것일까, 혹시 마음과 몸이 같이 온 것은 아닐까.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이 된 그에게 무슨 얘기를 했을까. 박 전 대표가 소환명령을 내리면 장관직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달려 갈 수 있을까….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겐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농정 보다는 정치, 그 중에서도 대권 얘기. 취임(8월30일) 한 달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 장관은 장관 직함보다 친박 꼬리표의 무게가 훨씬 더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어떤 식으로든 (박 전 대표에 대해) 말을 하면 그 얘기만 부각되지 않겠느냐”며 언급 자체를 피했다. ‘친박 유정복 의원’으로부터 궁금했던 정치 얘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유정복 장관’에게서 농정 현안에 대한 입장과 철학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최연소 군수(김포군수), 최연소 구청장(인천 서구청장), 최연소 시장(김포시장) 등 여러 기록을 갖고 계십니다. 본인의 가장 큰 강점은 뭐라고 보시는 지요.
“시장ㆍ군수 시절의 업적들이 제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은 조직이 하는 거죠. 다만 조직의 수장은 그 조직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화합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네요.”
- 이번 개각에 등용된 장관들 가운데 가장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훌륭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저는 (재산증식 같은) 그런 부분에는 원래 신경을 안 썼어요.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될 거에요. 그래서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게 없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 통제할 수 없지 않을까요.
“(유 장관 외에 이재오 특임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등 모두 4명이 있다는 걸 확인한 뒤) 사실 어떤 게 국정운영에 더 바람직한 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죠. 하지만 장관은 때론 부처가 갖고 있는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을 필요가 있어요. 국민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치인 장관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농업 문제만 해도 그래요. 지금의 농업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와의 협업을 통해 풀어야 하는데 이 경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외부 출신 장관이 보다 유리할 겁니다. 또 지금의 농업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외부 장관, 정치인 장관의 장점이 아닐까요?”
- 그렇다 해도 유장관께서 쌓아온 이력이 농식품부 장관직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10년 동안 몸 담았던 김포는 작물재배, 축산, 수산 등 다양한 농어업 분야의 행정이 이뤄지는 종합행정의 축소판이었죠. 그 때의 경험은 우리나라 농림수산식품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전문성 부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특히 농수산업 정책은 현장에 대한 이해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앞으로 현장과의 소통에 힘쓸 계획입니다.”
- 취임 한 달이 다가오는데, 이건 좀 문제가 있더라 싶은 게 있던가요.
“직원들이 열심히 일은 하는데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예를 들면 쌀 가격 대책이라든가, 태풍 대책 같은 사안을 처리하는 걸 보면 신속하게 하기는 하는 데, 새로운 건 없는 거에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틀에서 대책을 강구하나 보니까 그런 거죠. 사고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취임하자마자 8.29 쌀 대책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런데 한시적인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해묵은 문제를 계속 끌고 가면서 수급 안정을 도모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다소 임시방편적이긴 하지만, 과감한 대책(연간 예상 수요량인 426만톤을 초과해 올 수확기에 공급되는 쌀을 전량 시장에서 격리)이 필요했던 거죠. 일단 올해 쌀값부터 안정시킨 다음에 올해 안에 발표될 쌀산업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근본 대책을 마련할 겁니다.”
- 쌀산업 5개년 종합계획에는 어떤 대책들이 담기게 되나요. 정말로 획기적인 대안을 기대해도 좋겠습니까.
“종합계획을 위해 장관 직속으로 쌀 관련 전문가, 농업인대표, 민간 가공업체․유통업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쌀 산업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쌀 직불제 개편과 생산 비용 절감과 같은 농가 소득안정 대책, 농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생산조정제, 미곡종합처리장(RPC) 구조조정 등의 쌀 유통시스템 선진화, 재고미 처분 제도화 등 쌀 산업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담을 겁니다. 계획대로 추진만 된다면 쌀 수급조절도 앞으로는 시스템적으로 이뤄질 거에요.”
- 그 중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가 있을 텐데요.
“유통입니다. 미래 농업의 핵심 키워드는 유통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 농업은 과거다량 생산이 최고의 선이었죠. 하지만 이제 고품질, 건강식 생산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농가의 소득을 높이는 방법은 유통혁신이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유통이 바로 서야 농가도 좋고 소비자도 좋아져요. 직거래를 늘리고, 사이버 거래를 통해서 유통 단계를 줄이는 등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을 겁니다.”
- 쌀이 지금처럼 남아 돈다면 북한 지원 문제도 전향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대북 쌀 지원은 국내 쌀 재고 문제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인데요. 하지만 쌀이 군량미로 비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원 여부는 남북간 군사적, 정치적 여건 등 종합적 판단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 내년 쌀 조기 관세화는 결국 무산이 된 건가요.
“조기 관세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합니다. 관세화가 늦춰지면서 생기는 손실(매년 의무수입량 2만톤씩 증가)이 이만 저만이 아니죠. 전문가들 의견 종합하면, 당장 관세화를 해도 실보다는 득이 클 걸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부터 관세화를 하려면 3개월 전인 9월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에 통보를 해야 되는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죠. 농민 단체를 상대로 꾸준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 그래도 조기 관세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좀 더 강력하게 밀어 붙였어야 하는 거 아닌지요.
“그런 지적이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 혼란과 불신만 초래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내부에서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대외 협상에서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원만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우리 농축수산업 충격이 상당할 거란 우려가 많습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농축수산물 생산과 소비구조가 우리와 비슷해서 우리 농어업에 큰 영향을 줄 걸로 우려가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ㆍ중 FTA가 본격 추진된다면 사전협의 단계부터 우리 농수산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공략 포인트를 찾는다면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봅니다. 중국도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고급 농식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기에 따라 중국도 우리의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도 거센데요. 한ㆍ미 FTA 추가 논의에 따라 쇠고기를 일부 양보할 수도 있을까요.
“아직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논의 요청이 온 게 없습니다. 만약 협의를 하더라도 큰 원칙은 지켜나갈 겁니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려면 국내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는데요. 신뢰 회복 여부를 숫자로 못박아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여론조사 등을 통해서 소비자의 심리가 회복됐다고 객관적으로 확인이 돼야 할 겁니다. 설사 이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려면 국회 심의 절차도 거쳐야 됩니다.”
- 한식 세계화는 의욕에 비해서 아직 성과는 별로 없는 거 같습니다.
“공급자 중심의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이 세계 각국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호텔에는 한식당이 없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 수요가 없다는 게 이유인데,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바꿔야죠. 수요자 입장에서 봐야 한식도 세계화가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특정 나라의 음식을 세계화 시키는 작업은 고도의 전문 기술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공무원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어려워요.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고, 공무원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봐요.”
-농식품부장관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우리 사회는 특별한 것에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서울특별시, 무슨무슨 특별법 같은 게 대표적이죠. 이러면 결국 특별하지 않은 것들은 무력화되지 않겠어요. 제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은 특별한 정책을 자꾸 만들기보다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는데 집중할 겁니다.”
■ 약력
▦1957년 인천생
▦제물포고·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94년 관선 김포군수, 95년 초대 민선 김포군수,
98년 초대 김포시장
▦2001년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겸임교수
▦제17·18대 국회의원
▦2007년 17대 대선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
▦2010년 8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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