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신화서로 알려진 '신이경(神異徑)'이란 옛 책이 있다. 이 고서는 한대의 동방삭(東方朔)이 편찬하고 진대의 장화가 주를 달았다고 전해진다. 삼천갑자(三千甲子), 즉 18만년을 산 장수인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박삭이 그런 책을 썼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책 속에 더 신기한 동물들이 나온다.
그 중에 궁기(窮奇)라는 동물이 있다. 궁기는 '산해경(山海經)'에도 나오지만 '신이경'에는 이렇게 소개된다. 이 짐승은 생김새가 호랑이와 비슷하지만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서는 정직한 사람을 잡아먹는다. 또 어떤 사람이 성실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의 코를 베어 먹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흉악하고 그릇되다는 말을 들으면 짐승을 잡아 선물로 바쳤다고 한다. 궁기란 동물은 말하자면 옳은 말, 바른 말,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잡아먹거나 코를 베어 먹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짐승을 잡아 선물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만들어낸 동물이겠지만 그 궁기가 실존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같은 세상이라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궁기는 실존하는 동물이다. 정론직필하지 못하는 일부 언론이 궁기 같고, 인터넷의 '악플러'들이 궁기 같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본다. 때론 내 독한 글이, 말이 누군가에게 혹시 궁기가 아닌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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