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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해는 아직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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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해는 아직 진행 중

입력
2010.09.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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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지나간 물난리였다. 추석 전날인 21일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1만5,000여 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쾌청한 가을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하늘은 능청을 떨고 있다. 30년쯤 전 여름이었다. 설악산에 놀러 갔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산 중턱 계곡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갔다. 하늘은 너무나 맑았고 그 개울은 평소처럼 한 뼘 정도의 깊이로 졸졸거리고 있었다. 경찰관이 "여기서 물에 빠졌다"고 말했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은 그렇게 잽싸고 무서운 놈이다.

■ 친척 형님이 수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아담한 야외 체육시설인데 그 무거운 설비들이 중장비로 쓸어놓은 듯 배수로 쪽을 향해 뒤엉켜 있었다. 쾌청한 하늘과 진흙탕 바닥을 번갈아 보면서 옛날 설악산이 생각났다. 21일 당시엔 마당에 흙탕물이 가슴께까지 소용돌이 치며 흘렀다고 했다. 그 형님은 그 날 배수로를 살피려다 물 웅덩이에 빠졌는데 평소엔 없던 웅덩이의 깊이가 키를 넘었다고 했다. 큰 사고를 당할 뻔했고 앞으로도 열흘 이상 뒷정리를 해야 하는데 의외로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 평소 시설을 이용하던 이웃이 찾아와 봉투를 내밀며 격려하더라고 했다. 평생 처음 받아본 수재의연금인 셈인데 그것이 그렇게 감격스러운 것을 미처 몰랐다고 했다. 배수펌프 모터가 작동하지 않았는데 추석날 오전 성묘 길에 나섰다가 달려와 기어이 수리를 해준 이웃의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교회 청년 10여명이 찾아와 뻘에 묻힌 장비를 옮기고 바닥의 흙을 치워주었는데 그 손길들이 그렇게 고마운 줄 처음 느꼈다고 했다. "그들이 수해를 입었다면 나는 과연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하는 형님의 말이 이번엔 나에게 감동을 전했다.

■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이웃도 있기 마련이다. 사물함에 보관한 물품이 망가지거나 없어졌다며 보상을 요구하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시설 이용을 못하게 됐으니 그만큼 환불해야 한다며 전화로 다짐을 놓는 '실속파'들이 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격려하고 도와주는 이웃이 제 것만 챙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피해 당사자로선 고마움을 느끼는 감동이 섭섭한 마음의 구석을 채우고도 남아 보였다. 불이 난 곳에는 건질 물건이 있지만 물이 든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물과 진흙과 쓰레기와의 전쟁은 이번 주 내내 이어질 것 같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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