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의 한 편의점 앞. “가까운 길을 돌아간다”며 택시비를 내지 않겠다는 50대 남성과 택시 기사와의 승강이가 벌어졌다. 고성이 오가고 멱살잡이까지 할 찰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 소속 순찰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앞 좌석에서 내린 한 경찰관, 순찰용 조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계급장은 분명 치안총감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었다.
조 청장은 승객과 택시 기사 가운데 서서 조율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승객은 요금을 내고, 다른 택시를 잡아 드릴 테니 타고 가시죠.” 나이 지긋한 경찰관이 나서자 다툼이 이내 잦아들었다. 택시를 옮겨 타던 승객,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현오 청장이시죠”라고 묻는다. “예. 맞습….”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객은 조 청장을 끌어 안았다.
옅은 회색 반팔 상의에 감색 바지, 허리띠에 권총 삼단봉 수갑 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조끼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는 쉴새 없이 ‘삑삑’대는 무전기를 꼽은 조 청장. 경찰청 집무실에 있거나 퇴근했어야 할 그가 왜 순찰을 돌고 있을까.
경찰청은 총경(과장급) 이상 지휘부 57명의 야간 치안현장 체험을 24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실시하고 있다. 현실적인 야간 치안대책을 모색하고, 밤샘 근무의 고충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조 청장은 25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신촌지구대에서 경사 2명과 한 조를 이뤄 체험에 나섰다.
조 청장은 26일 새벽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낯선 사람이 출몰했다는 학교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일대 수색작업을 벌였다. 앞서 자정 무렵에는 신촌 유흥가에서 불법 호객행위를 한다고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게 꼬박 밤을 샌 조 청장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오전 7시 지구대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탁에 둘러앉은 지구대원들에게 조 청장은 “현장 경찰관들이 매일 밤 졸음을 쫓아가며 얼마나 힘겨운 근무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면서 “건강상 문제점을 초래하는 근무체계를 개선하고, 노고에 상응하는 보수체계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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