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무명 생활 끝에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선수로도, 지도자로도 빛을 보지 못했지만 신념을 갖고 정진한 끝에 전인미답의 자리에 올라섰다.
2010 FIFA 여자 청소년 월드컵(17세 이하)에서 정상에 오른 최덕주 감독(50)의 이야기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 최 감독이 “우승이 목표”이라고 야심찬 각오를 밝혔을 때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 감독은 온화함으로 어린 선수들을 보듬어 팀 전력을 극대화했고 결정적인 순간 뚝심 넘치는 지도력을 발휘하며 세계 정상 등극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최 감독은 우승 후 축구협회를 통해 “꿈만 같다. 우승 목표가 실현될 줄 몰랐다. 대회 기간 내내 부상 선수가 많아 고민이 많았다.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벅찬 우승 소감을 밝혔다.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 연장 혈투(6-5)와 스페인과의 준결승(2-1) 고전으로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치른 결승에서 최 감독의 용병술은 빛을 발했다. 백미는‘히든 카드’의 적중이었다. 2-3으로 뒤진 후반 33분 최 감독은 이소담(현대정과고)을 투입했다. 이소담은 그라운드에 나선지 1분 만에 상대 수비진에서 흘러 나온 볼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그대로 오른발 슛, 통렬한 동점포를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최 감독은 일본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축구 명문 동래고와 중앙대를 졸업했고 실업 축구 한일은행과 포항제철에서 활약했지만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1986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1년 유학한 그는 1987년 일본 실업축구 마쓰시타 전기에 입단해 2년간 활약했고, 90년 모모야마대 코치로 취임하며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호고쿠 공업고(1992~98), 오사카 조선고(1998~2001), 오사카 대표팀(2002~04)을 지도한 최 감독은 2005년 국내로 돌아왔고 2006년 12월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임명됐다. 지난해 16세 이하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아시아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세계 정상 정복의 신화를 써냈다.
최 감독은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딸 같은 선수’들을 푸근하게 보듬었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며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 같은 최 감독의 ‘온화한 힘’은 8강전과 준결승, 결승에서 잇달아 역전 승부를 일궈낸 원동력이 됐다. 최 감독은‘이기는 축구’를 강조하는 풍조가 만연돼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 유소년 축구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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