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과 불의의 부상도 세계무대를 향해 날갯짓하는 ‘여왕별’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천재 골잡이’ 여민지(17ㆍ함안대산고)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우뚝 섰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청소년월드컵에서 한국의 우승을 주도한 여민지는 대회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과 골든 부트(득점왕)를 동시에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6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8골 3도움을 기록한 여민지는 한국 선수 중 그 누구도 밟지 못한 ‘대회 최고 선수’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전까지는 지소연(한양여대)이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받은 실버볼이 FIFA 주관대회의 개인 최고상이었다.
‘골잡이’의 화려한 명성 뒤에는 남모를 노력과 시련이 뒤따랐다. 초등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딸의 성장통과 무릎 부상 등을 안타까워했던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축구공을 놓지 않았다. 빼어난 스피드와 남다른 골 감각을 지녔던 여민지는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일기’를 쓰는 등의 피나는 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득점왕을 휩쓴 그에게는 ‘득점기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함안함성중을 거쳐 대산고에 재학중인 여민지는 제대로 된 숙소가 없어 함안공설운동장의 빈 공간을 메운 ‘임시숙소’를 사용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축구여왕의 꿈을 잃지 않았다. 경남FC 사령탑 시절 여민지를 지켜봤던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주위에서 보니 새벽부터 시작해 오전, 오후, 밤까지 훈련하는 것 같더라. 남자들보다 2, 3배의 노력을 더한 게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2의 지소연’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여민지는 월드컵 두 달 전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했다. 지난 7월 강원도립대와 평가전에서 2년 전에 다쳤던 무릎을 다시 다친 것.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5분의1 정도 파열되면서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해졌다.
의료진이 ‘대회 전까지 완치가 힘들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여민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전념했던 그는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다.
8월 말 미국 전훈기간이 돼서야 실전 경기를 뛴 그는 여전히 몸 컨디션이 70% 정도였다. 하지만 전력의 핵심으로 꼽혔던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첫 경기부터 팀의 급박한 사정 탓에 조기 투입됐고, 2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는 4골1도움의 ‘원맨쇼’를 펼쳤고, 스페인과 준결승전에서는 동점골과 역전골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여민지는 “오늘도 많이 아팠다. 그래도 우승을 위해 꾹 참고 뛰었다. 앞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더 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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