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정민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것들이에요."
어머니 김옥희(46)씨는 표창장과 상장이 빼곡히 들어찬 묵직한 파일 두 권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서울 서부교육청 주최 소논문 최우수상(2003), 통일부 주최 전국학생글짓기 최우수상(2005), 서울시 주최 산문부문 수상(2005) 등 홍정민(17ㆍ중앙여고 2)양이 교내외 각종 대회에서 받은 150여 개의 상장이 정민양의 앳된 얼굴 사진들과 함께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보물처럼.
24일 오전 정민양 가족이 지내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시영아파트를 찾았다. 18평 남짓한 곳이 아버지 홍승표(44)씨와 어머니, 오빠 성훈(18) 남동생 성우(14) 성태(7) 여섯 식구가 아옹다옹 살아가는 보금자리.
교내 한문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고 이과(理科)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를 잘 하는 정민양은 특히 글쓰기가 뛰어나 각종 대회 수상 실적이 화려하다. 김씨는 "소질도 있지만 아무래도 오빠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연년생인 오빠 성훈(상암고3)군은 뇌병변1급 장애자다. 난산(難産)으로 산소 공급이 부족해 태어날 때부터 얻은 장애다. 김씨는 성훈군 재활 치료에 늘 바빴던 터라 어린 정민양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혼자 집에 돌아와 라디오로 동화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책이 정민양의 말동무이자 친구였던 셈이다. 김씨는 "성훈이도 책을 읽어주면 덜 울고 해서 옆에 있던 정민이도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다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정민양에게 2003년 시련이 찾아왔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다니며 스티로폼 운송을 하던 아버지가 중앙차로를 넘어선 음주운전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가 1년여간 여섯 번의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을 동안 오빠와 두 동생을 돌보는 것은 정민양의 몫이었다.
사고 후유증(신체장애6급)이 생긴 아버지는 아직도 몸이 불편한 상태다. 정민양은 "막내 동생을 안고 울먹이던 때가 생생하다"며 "힘들 게 지내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누군가 불을 질러 배달할 스티로폼이 다 타버려 애들 아빠가 일을 그만두려 했을 때 '힘드셔도 조금만 더 참아주시면 꼭 은혜를 갚겠다'는 정민이 쪽지 덕에 다시 기운을 내기도 했다"며 "겉으론 쌀쌀맞은 척 해도 마음이 따뜻한 딸"이라고 뿌듯해했다.
담임을 맡고 있는 은정주(45) 교사도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명랑한 성격으로 학급 회장을 맡아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학생"이라며 "머리도 좋지만 휴일에도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노력파"라고 칭찬했다.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가 있지만 정민양의 꿈은 의사다. "몸이 불편한 오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불편해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거든요."
정민양은 꿈을 이룰 그날을 위해 새벽 2시 이전에는 잠들지 않고 졸린 눈을 비비며 책과 씨름하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성우가 엄청 말을 안 듣는 개구쟁이였는데 요새는 누나 공부해야 한다고 오빠도 챙기고 의젓하게 구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며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도 돕고 부모님에게 번듯한 집도 사 드리고 싶다"고 웃었다.
마포구 모범 청소년으로 뽑혀 다음달 15일 상을 받는 정민양의 간절한 꿈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