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던킨 지음ㆍ구건서 옮김/한울 발행ㆍ376쪽ㆍ2만9,000원
직장인에게 출근은 이제 더 이상 숙명이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폰은 일과 삶의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스마트워킹 시대다. 삼성, KT, SK, 포스코, 서울지하철공사 등 국내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바로바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KT가 지난 8월 분당에 연 스마트워킹센터는 사무실 밖 원격근무 센터이다.
정부도 나섰다. 2015년까지 공무원의 30%, 전체 노동인구의 30%가 스마트워킹을 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큰 아파트 단지마다 스마트워킹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고 공무원의 근태 관리, 인사 제도, 조직 체계도 스마트워킹에 맞게 바꾼다는 계획이다.
스마트워킹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출퇴근시간 교통 정체, 일과 가정의 틈바구니에 끼어 괴로운 워킹맘, 에너지 위기 등의 문제에 해결책이 될 거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휴가 중에도 업무를 챙겨야 하는 등 일과 휴식의 경계가 흐려지는 바람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는 불만도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는 스마트워킹 시대, 일과 직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점검하는 책이다. 저자 리처드 던킨은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일과 고용에 관한 칼럼을 14년간 매주 연재한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오랜 취재 경험과 인터뷰, 통계 분석과 각종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같은 제목으로 올해 나온 원서가 발빠르게 번역 출간됐다.
그는 지금이 지식정보혁명으로 인해 일과 직장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분수령이라고 본다. 직장과 가정, 일과 삶의 분리가 사라지고, 먹고 살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삶의 보람과 재미, 만족을 위해 일하는 세상이 온다고 말한다. 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은퇴의 개념도 사라져 나이가 몇이 됐건 일하고 싶으면 일하는 사회가 된다고 전망한다.
CEO를 정점으로 한 서열 구조나 고액 연봉을 받는 관리직은 없어지고, 대신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팀워크와 프로젝트형 업무가 일반화할 것이라고 본다. 정시 출퇴근이 아닌 자유 근무, 사무실이 아닌 재택 근무가 보편화함에 따라 일한 시간의 양보다 일의 성과가 더 중요해질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는 주 요인으로 그는 디지털혁명과 인구 구성의 변화를 든다. 예컨대 유무선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등 통신기술의 발달,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 서비스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협력해서 일을 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브랜드화할 수 있게 됐다.
굳이 기업 같은 조직에 들어가거나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서 일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고령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주노동자의 증가에 따른 사회 구성의 변화 또한 정년 제도 등 전통적인 기업문화를 해체하는 압력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일과 일터는 좀 더 유연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형태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달라지는 세상에서 종전 같은 기업 문화와 관리 제도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사람들이 일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근무시간과 방식에 더 많은 자유 재량과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고용주와 정책입안가들이 일의 미래에 대비하면서 명심해야 할 사항 18가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근무 시간의 양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하라, 은퇴라는 개념을 은퇴시켜라, 직원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켜라, 채용 기준을 확대해서 다양성이 풍부한 직장을 만들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의 미래 전망은 낙관적이다. 특히 기술 발달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부작용보다 장점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낸다. 2059년의 세계를 상상한 책의 제12장은 거의 모든 직종의 재택 근무, 권력의 중앙집중이 아닌 분산형 참여민주주의, 환경 위기를 해결한 대체에너지, 빈부 격차가 많이 사라지고 부자는 대부분 자선활동을 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심지어 유전자 조작으로 아가미와 물갈퀴를 단 수영선수가 활동하는 공상과학 같은 상상을 하면서도 이를 큰 거부감 없이 미래 문화의 다양성 중 하나로 본다. 이건 동의하기 어렵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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