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이들은 (동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에 끌리는가.
이 질문은 낯설게 들린다.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남자와 여자 사이 이성애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게이와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인권 운동가들의 외침이 많이 커졌지만, 동성애를 반사회적 비행으로 규탄하거나 심지어 퇴치해야 할 질병으로 보는 견해도 여전히 완고하다.
성의 역사에 관한 전문가이자 성 소수자 차별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가인 루이-조르주 탱이 쓴 는 이성애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성애적 생식이 인간 사회의 생물학적 토대라고 해도, 이성애 문화는 여러 문화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유일하고 보편적인 본보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성애는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오를레앙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왜 이성애 커플을 기리기 시작했는지, 12~20세기 프랑스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양에서 이성애 문화는 12세기 초 귀부인을 숭배하는 궁정문화가 꽃피면서 등장했다. 그 전에는 남녀간의 사랑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남성들 간의 우정을 상찬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기사도의 전통은 사나이들 간의 사랑을 찬미했다. 전사 계급인 기사들은 집단생활을 하고 위험한 전투에 함께 참여하면서 우정이나 동지애를 뛰어넘는 열렬한 감정을 공유했다. 그것은 꼭 육체관계에 이르지는 않는다 해도 분명 동성애적 사랑이었다.
기사도로 대표되는 동성애 문화가 이성애 문화에 밀려나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기사들은 궁정식 사랑에 길들여져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했고, 독신 남성 사제들의 집단인 가톨릭교회는 성적인 욕망을 금기시해 남녀 간 사랑을 타락으로 봤다.
동성사회의 전통과 이성애 문화의 갈등은 중세 기사도 문학의 대표 격인 '롤랑의 노래'의 시대별 판본에서도 나타난다. 원래는 롤랑과 올리비에, 두 남성 영웅의 뜨거운 사랑을 찬양하던 내용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선 여자와 사랑에 빠진 롤랑 이야기로 변한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그리 거세지 않았던 이성애 문화가 동성애 문화에 압승을 거둔 것은 17세기에 와서다. 의사들은 19세기 말까지도 이성애를 연애망상 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신질환으로 간주했다.
저자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도 동성애 시를 썼지만, 나중에 남의 손에 변조되어 이성애로 강제 편입됐다. 1609년 발표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음에 실린 126편의 시는 한 젊은 남자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인데, 1640년 판본에서 '그'와 '그의'를 '그녀'와 '그녀의'로 바꿔 동성애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 문학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당연시해온 이성애와 이성애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성애는 정상,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은 이 책에서 근거를 상실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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