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상징에서 산업화의 첨병으로
■ 경부선 / 이수광 지음
등 역사소설을 쓴 작가 이수광씨가 1905년 개통돼 한반도의 동맥 노릇을 해온 경부선을 중심으로 엮은 한국 철도 역사.
"인천에서 한양이 백리 길인데, 덜컹대는 쇠수레를 타고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 만에 오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꿈이나 꾸었습니까?" 1899년 개통된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 열차 안에서 '청심보명단'을 팔아 떼돈을 번 약장수 이경봉의 말처럼, 기차는 근대화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이 땅에 왔다. 일제에 의해 건설된 경부선 철로엔 "힘깨나 쓰는 장정 철도 역부로 끌려가고, 얼굴 반반한 계집 갈보로 끌려간다"는 노래가 유행했을 정도로 수많은 조선인들의 피와 눈물이 뿌려졌다.
일제시대엔 수탈열차이자 신학문에의 열망을 담은 유학열차로 또 징용열차로, 해방 이후엔 피란열차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화의 첨병으로, 모습을 달리하며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해 온 철도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효형출판 발행ㆍ304쪽ㆍ1만2,000원.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우리 가족과 지구를 살리려면 이렇게 먹어라
■ 살림의 밥상 / 김선미 지음
살림 잘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된 저자가 사람뿐 아니라 지구에도 이로운 식생활을 제안한다. 몸에 좋고 영양 많은 식단을 구체적으로 일러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생태계에 부담을 적게 주면서도 식량 시장에 작동하는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소비자가 새로운 시각을 갖고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는 윤리성을 지녀야 한다고 다그치는 책이다.
쌀과 밀, 잡곡을 다룬 1부에선 과거 정부의 분식장려책은 미국 밀 농가의 이해를 대변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두루 생각하는 유기농 국산 쌀 소비를 권장한다. 과일ㆍ채소를 다룬 2부에선 사시사철 수확이 가능한 시설농가 중심의 생산 구조가 석유를 대량 소비하면서 지구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축이 학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식용으로 대량 사육되는 현실을 짚으며 '고기에게 덜 미안한' 식습관을 제안하는 3부, 유전자변형농산물의 안정성 문제를 면밀히 살핀 4부에도 새겨 들을 대목이 많다. 동녘ㆍ336쪽ㆍ1만3,000원.
이훈성 기자 hs0321@hk.co.kr
스크린에 비춰진 한국 현대사의 파노라마
■ 영화는 역사다 / 강성률 지음
역사가가 과거를 팩트로 해석한다면 영화감독은 과거를 극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책은 영화감독의 시각과 이데올로기를 꼼꼼히 짚어가며 지난 한 세기 한국영화의 스크린에 비춰진 한국현대사의 무늬를 보여준다.
예컨대 4부 '군부독재와 영화'의 첫머리 '베트남전의 기억' 편에선 '월남전선 이상 없다'(1966)부터 '님은 먼 곳에'(2008)까지를 찬찬히 뜯어보며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읽는다. 1960년대 반공이라는 국시에 충실히 복무했던 영화는 1980년대 참전 군인의 고통을 그리기 시작, 1992년 '하얀전쟁'에 이르러 양민학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리고 용병으로서 한국군의 모습('알 포인트'ㆍ2004), 식민의 기억을 공유한 아시아인의 입장('님은 먼 곳에'ㆍ2008)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과거의 시간을 재현하는 것은 곧 과거를 현재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건 과거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아직도 많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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