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엄마, 저출산대책에 뿔났다…
#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일하는 위킹맘 김모(31)씨. 엄마가 출산휴가를 끝내고 회사에 복직한 뒤 분리불안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2)를 생각하면 당장 육아휴직을 내고 싶지만 현실에선 꿈도 못 꾼다. 자신도 여느 직장인 같이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을 가입했기에 육아휴직 신청 대상자가 되지만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 상태라 육아휴직 신청은 남의 나라 얘기다.
# 지난해 말 한 대기업에서 퇴직한 김모(59)씨에겐 요즘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퇴직 전 준비해 왔던 옷가게 장사가 생각보다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힘든 건 수령 연금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연금 성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고교 동창으로 거의 같은 기간 연금을 넣은 전역 대령과 전직 교사가 받는 연금이 자신의 3~4배가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가 최근 들어 국정 기조의 키워드로 '공정한 사회'를 제시함에 따라 전 분야에 걸쳐 공정과 정의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정의 의미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어야 할 곳이 복지 분야다. 전 국민이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보듬어 주어야 할 것이 복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복지는 현 정부가 외치는 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 엄마 둔 아이도 비정규직 대우?
"똑같이 돈(고용보험)을 냈는데 엄마가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아이까지 차별받아서야 되겠나." 기간제교사 김씨는 최근 정부 저출산대책의 육아휴직급여 인상안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육아휴직 시 기존에 월 50만원을 주던 것을 통상임금의 40%(최대 월 100만원)로 올린다는 내용인데 정부가 과연 그 대책의 수혜 대상과 파장을 제대로 생각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 말대로 고용보험을 낸 워킹맘을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라면 워킹맘이 기간제이든, 아니든 육아휴직 급여 혜택을 공평하게 받도록 하는 게 정책 입안자가 할 일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 인상안의 혜택을 받을 워킹맘은 대기업에 다니는 소수의 정규직 여성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사실 김씨처럼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기간제교사 등 대다수의 비정규직 여성들은 회사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 신청 자체를 엄두도 못 낸다. 김씨는 "기간제교사가 육아휴직을 내면 곧바로 다른 교사가 그 자리를 채우는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사람은 없다"며 "고용보험료을 내고도 혜택은 정규직에게만 집중되는 게 공정한가"라고 되물었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전체 여성 근로자의 70% 가까이는 김씨와 같은 계약직근로자다.
김씨의 바람은 공평이다. 그는 "육아휴직급여는 결국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인데 엄마의 신분에 따라 아이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국민노후보장인데 이렇게 달라서야
1950년대에 태어나 대한민국 개발 경제를 이끌어 온 베이붐세대. 자신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할 틈도 없이 사회에서 하나둘 밀려나고 있지만 그들이 기댈 곳은 많지 않다. 다행인 점은 공적연금제도가 시행된 탓에 연금이 노후보장의 큰 축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상 60세 전후가 되면 정부 민간 학교 등 자신이 몸담아 온 분야가 어디든 연금 수령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여기서도 공정성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국민이 어떤 종류의 연금(국민 사학 군인 공무원)에 속해 있든 그간 불입한 보험료가 유사하다면 정년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지 말아야 하고, 차이가 난다면 각 연금의 수령액이 엇비슷하도록 관련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88년부터 퇴직 당시인 작년 말까지 22년간 연금보험료를 납부한 김씨의 불만이 여기에 있다.
김씨가 7월부터 받는 조기노령연금(60세 이전 신청해 받는 국민연금)은 월 58만원. 대령으로 퇴직한 친구는 월 250만원(군인연금), 교사로 퇴직한 친구는 월 200만원(사학연금)을 받고 있다. 전 대령 친구가 3년 정도 불입 기간이 길긴 하지만 대기업 월급 등을 고려하면 전체 불입액은 오히려 김씨가 많다. 전 교사 친구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각자 선택된 길에 따라 혜택이 달라지는 상황을 뭐라고 할 순 없다"며 "하지만 한쪽만 국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매워 주는 상황이 과연 옳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경우 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면서 연금수령액을 최고 33% 줄이는 국민연금 개혁이 2007년에 이뤄졌지만 공무원연금의 경우 이명박정부가 개혁과제로 내세웠음에도 반발에 부딪혀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을 위해 지난해 무려 1조9,028억원이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개혁에서 비켜나 있는 군인연금에도 지난해 9,400억원이 지원됐다.
이태수(꽃동네현도복지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공정사회는 기회균등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양육과 연금에서 빈곤층이 더욱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제대로 재정을 집행하는지 잘 따져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현실 모르는 복지제도
이명박정부가 집권 하반기 국정 기조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는 결국 촘촘한 복지 제도가 기초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사회의 큰 축이 국민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성공과 자아실현이 가능토록 하는 것인데 그 열쇠는 한국 사회의 그늘에 있는 약자를 국가가 배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복지 제도 측면에서 공정사회라고 평가하기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게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 예가 기초생활수급자의 최저생계비다. 8월 보건복지부는 내년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월 143만원(현금 지급 기준 119만원)으로 정했다. 전년에 비해 5.6% 오른 것이니 인상률만 놓고 보면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부도 소비자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결정한 것인 만큼 최대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현실을 외면한 생계비 책정이다. 도시 빈민들이 느끼는 소비자물가는 통계청 자료에 나오는 숫자 물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최저생계비 계산방식에 따르면 40세 남자는 9만원 짜리 정장 두 벌로 12년을 나야 한다. 최저생계비의 절대적 수준이 공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최저생계비가 인플레를 반영해 꾸준히 올랐다고는 하지만 전체 소득 수준 상승과 비교하면 역주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시근로자가구의 중위소득(전체 근로소득자의 중간에 위치한 소득액) 대비 최저생계비는 2000년 43.6%였지만 10년 뒤인 2010년에는 36.1%로 7.5% 포인트 줄었다.
여기에다 최저생계비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삶은 더욱 비참할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70대 박모씨는 변변한 벌이가 없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다. 법률상 부양의무자로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은 연락조차 끊겨 아무런 도움을 받질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최저생계비를 받질 못한다. 이처럼 국가도, 가족도 돌보지 않은 빈곤층은 무려 1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은 요원하다.
소득이 없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복지 체계 시스템에 아예 들어오지 못한 경우도 문제다. 이들은 몸이 아프면 아예 의료 서비스의 수혜를 받기 어렵고 노후에는 극빈층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뒷받침해 줘야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도 많지 않다 보니 뒷짐을 지기 일쑤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공정사회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복지 제도를 확충해 한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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