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양천구 신월동 지하 방에 사는 A(여)씨 가족의 힘겨운 삶은 더욱 막막해졌다. 순식간에 차 들어온 물로 집이 난장판이 돼 장판이며, 벽지며 쓸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홍수 때 물에 둥둥 떠다닌 가전 제품도 고스란히 버려야 할 판다. 더 한심한 것은 이 가족의 형편이다. A씨는 심장병을 앓고 있고 남편도 지병으로 누워 있는데 젊은 아들은 아직 취업을 못했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고위 인사들이 이 집을 위로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은 제대로 해 주겠지’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곤 이 대통령이 방문한 자리에서 A씨는 재난지원금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돈은 100만원이었다. 유일한 보금자리가 폐허로 변해 당장 길에 나앉게 생겼는데 100만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이 지원되고 있지만 피해 주민들의 깊은 시름을 달래 주기엔 역부족이다. 피해 복구에 대부분 수백만원은 드는데 재난지원금 100만원으론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주택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장이다. 설비 등 내부 피해가 많은데 주택에 준해서 똑같이 100만원을 받는다. 서울시가 피해 중소상공인에게 최대 2억원을 2%의 저리로 대출해 주기로 했지만 어차피 빚이어서 별 도움이 못 된다.
액수도 문제지만 지급 기준은 더 한심하다. 천차만별인 피해 사례에 적용하기엔 너무 허술한 것이다.
피해 주민 C씨는 “온 집안이 물바다가 된 경우나 물이 조금 들어왔다 나간 단순 피해나 모두 일률적으로 100만원씩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그는 “기준이 이렇게 엉망이다 보니 민원이 봇물을 이루는 게 당연하다”며 “오늘 오전 동주민센터에 들렀더니 직원들이 민원 전화를 받느라 일을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폭우 피해 자금 지원의 근거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자연재난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지침’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침수피해의 경우 100만원, 주택반파는 450만원, 완파는 900만원을 지급하도록 지침에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 주택파괴는 거의 없어 대부분 주택침수에 해당된다.
하지만 주택침수 지침은 ‘방바닥 이상이 침수된 경우’란 포괄적 기준밖에 없어 피해 주민들의 불만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선 실태를 파악하러 나온 공무원과 주민이 피해 정도를 둘러싸고 격한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도 적지 않았다.
폭우 피해 수습과 관련, 시 관계자는 “과거에는 각종 서류를 떼고, 사진을 찍어 채증하는 등 절차가 복잡했지만 이번엔 신속하게 자금을 집행했다”며 “56억원 중 오늘 오전까지 90%가 지원됐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다만 100만원은 원래 보상비 개념이 아니라 방바닥이나 벽지 등을 정리하도록 구호 차원에서 정부기준에 따라 나온 것”이라며 “충분한 수리 비용은 안 된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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