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러 수교 전인 1990년 6월 양국 간 경제협력을 위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면담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측근들에게 현대차를 러시아에 수출할 것을 지시했다. 넓은 국토와 잘 닦인 도로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드문드문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현대차는 현대종합상사를 통해 액셀 등 수백여대를 러시아 시장에 내 놓았다.
20년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주 카멘카 지역에서 열린 연산 15만대 규모의 현대차 러시아 공장 준공식. 삼엄한 경호 속에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갖춘 업체"라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몽구 회장은 "양국 간 경제 협력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현대차가 미국,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도 현지 생산 공장을 건설, '글로벌 톱3' 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현대차는 21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카멘카 지역에서 연산 15만대 규모의 러시아 완성차 공장(HMMR) 준공식을 개최했다. 5억달러(약 5,800억원)가 투입된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전체 약 200만㎡(60만평)의 부지에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공정 등 총건평 10만㎡(3만평) 규모로 건설됐다. 러시아에 진출한 10여개 글로벌 업체의 현지 공장 중 자체 프레스 공장을 갖춘 곳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푸틴 총리는 이날 정 회장과 함께 내년 초부터 본격 생산되는 '쏠라리스'를 시승하며 현대차에 대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쏠라리스는 베르나를 개조한 현지 전략형 소형차로 눈이 많은 현지 기후를 반영, 윈드실드 와이퍼 결빙 방지 장치와 급제동 경보 장치 등을 장착했다.
푸틴 총리는 "2008년 기공식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약속대로 공장을 완공한 현대차 관계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동반 진출한 협력사와 함께 현지 업체도 육성, 러시아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엘비라 나비올리나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지사, 이윤호 주 러시아 대사 등 양국 정부 주요 인사와 현대ㆍ기아차 임직원 등 70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에는 현대모비스, 성우하이텍 등 11개 부품업체들이 공장 인근에 동반 진출했다. 총 설비 가운데 70%의 상당을 직접 한국에서 조달, 최근 설립한 해외 공장 중 최대 국내 공급률을 달성했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은 "자동차 부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러시아 시장의 특성상 현대차의 진출을 계기로 국내 중ㆍ소 부품사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는 이번 공장 준공으로 미국 앨라배마주, 중국 베이징 등 해외 9개 공장에서 308만대, 국내에서 350만대 등 모두 658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2012년 가동 예정인 연산 40만대 규모의 현대차 중국 베이징 3공장 및 연산 15만대 규모의 브라질 공장이 모두 완공될 경우 현대ㆍ기아차의 연간 생산능력은 700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GM의 법정 관리와 도요타의 리콜 사태 이후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700만대 생산 및 판매를 놓고 선두권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대차의 이번 러시아 공장 준공 및 베이징 3공장, 브라질 공장 건설은 이 같은 맥락에서 글로벌 톱 3 진입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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