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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中企 돈 안 먹는 공직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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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中企 돈 안 먹는 공직사회를

입력
2010.09.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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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의 기억은 나이가 들면 수백 년 썩은 유골처럼 너덜너덜 해체돼 버린다. 하지만 첫 키스의 추억같이 의식 속에서 항상 강렬하게 꿈틀거리기는 것도 있다. 완전히 뇌리에서 사라졌다가 갑자기 어떤 계기로 떠오르는 기억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참 기억이란 묘한 것이다.

기억에 대해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것도 아닌데 새삼 그 오묘함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추석이 되면서 갑자기 어릴 적 추억 하나가 내 머리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잠재의식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추석이라는 단어가 입력되자 바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 기억의 주인공은 어릴 적 늘 붙어 다니던 동네 친구다. 워낙 친하다 보니 하루에 몇 번씩 집에 놀러 가도 흠이 안 되는, 그런 사이였다. 그 친구 집에 추석 무렵이면 항상 나타나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처진 눈에 번들거리는 피부, 왼쪽 뺨에 있는 큰 점이 꽤나 욕심 사나워 보이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필자 사이에서 그는 '음돌이(음흉한 점돌이)'로 통했다.

그는 친구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친구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 뒤 "차 한잔 하죠"라며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한참 뒤 봉투를 하나 들고 나오는데 친구는 거기에 돈이 들어 있다고 했다. 친구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하는데 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모두 찾아가 인사를 하고 제일 말단인 음돌이는 집으로 찾아오면 돈을 먹인다는 것이었다.

음돌이가 출몰하는 것은 추석만이 아니었다. 설에도, 휴가 때도 찾아오고 특별히 계기가 없어도 돈 떨어지면 그냥 와서 봉투를 받아 갔다.

동네 파출소의 경찰관 한 사람도 이 집의 단골손님. 이름은 모르겠는데 동네에서 이 순경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순찰을 거의 안 도는 게으른 사람이었지만 명절 무렵이 되면 동네를 친히 순시하다 이 집에 들어간 뒤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라고 너스레를 떨다가 봉투를 받아 나왔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많이 달라지면서 지금은 공직자들이 이런 식으로 공공연히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을 쥐어짜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도가 약해졌다 하더라도 공직자에게 이들은 여전히 봉이다.

인터넷을 한번 검색해 봐라. 공직자들이 돈을 받아 처벌됐다는 기사가 매일 한 트럭이다. 너무 숫자가 많아 다 못 써서 그렇지 이걸 전부 신문에 반영하면 1쪽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지면을 다 채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가 중소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대기업처럼 힘이 있으면 치받아 보기라도 하겠지만 어디 기댈 데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잘못 건드리면 사업은 접어야 하고, 가족들은 굶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로 '공정한 사회'를 내걸었다. 잘한 선택이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계와 자산가의 기부를 포인트로 잡은 것은 매우 적절했다. 이 부분은 국민들이 개선 필요성을 매우 심각하게 느껴 온 사회병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진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것 중 하나가 중소기업과 공직자 간의 투명한 관계 형성이다. 이는 사회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도 필요하지만 돈을 주지 않는 중소기업에게 공직자가 불공정한 대우를 해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서 생기는 경제 손실을 생각해도 절실한 일이다.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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