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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정한 부모-자녀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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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정한 부모-자녀 관계를

입력
2010.09.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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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성묘를 갔다. 충청남도 해안 주변에는 3주 전 위력을 떨쳤던 태풍 곤파스의 상처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그 흔적 속에서도 돌아가시던 전 날까지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보살피셨던 아버지의 따스함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고향을 찾은 우리는 그 곳에 한동안 머물렀다.

27년 전 아버지는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하셨다. 당시 필자는 갓 결혼했지만, 어머니와 교대로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새벽 보조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던 뺨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에 살짝 눈을 떴다가, 그것이 곧 아버지의 눈물임을 알고 얼른 눈을 감고 속으로 울었다.

부모는 보호본능 자제하고

아직 부족한 자식들을 남겨두고 떠나셔야 하는 마음이 무척 힘드셨으리라. 평소 엄격하셨던 아버지의 눈물을 그때 처음 보았고, 자녀의 자립을 강조하셨던 아버지의 보호 본능을 처음 느꼈다. 병상의 아버지는 평소와 달랐다.

그 다음날, 아버지는 사돈어른을 뵙고 싶다고 하셨다. 친구들의 병문안도 거부하셨던 터라, 시아버님은 반갑고 정중한 마음으로 두루마기까지 입으시고 병실을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가 큰 절을 하시며 "제가 죽더라도 우리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며 호소하셨다. 암 진단을 받지 않으셨다면, 딸이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셨으리라. 당시만 해도 시집 온 며느리가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로부터 딸을 온몸으로 보호하고 떠나신 아버지의 마음은 그 날 이후 시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어져 집안에서 특혜를 누렸다.

지금껏 누렸던 특혜가 내게는 무척 감사하고 소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간 평등을 침해하여 공정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불편했다. 특히 시부모님은 마음껏 여행도 못 가시고 손자들을 돌봐 주셨고, 다른 형제들은 차마 이런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우리사회의 영ㆍ유아 보육제도가 튼실치 못한 책임도 있다. 그러나 특혜를 누린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고 가족 간 평등도 회복하여 공정한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부모의 보호 본능이 원망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너무도 소중하여 자녀의 마음 안에 고스란히 담겨 돌아가신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다음 세대에게로 전달된다. 자녀 안에 부모가 있는 것이다. 다만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최근 자녀의 특채문제로 비난을 받았던 고위 공직자들, 성인이 된 자녀의 이성문제를 나서서 해결하려는 유명한 가수 아버지, 아들을 폭행한 폭력조직을 직접 나서서 보복한 모 그룹 회장, 이들의 속 마음에는 자녀의 자립 본능을 앞서는 부모의 보호 본능이 있다.

인간은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형태로 태어나지만 점점 자라면서 혼자 기어 다닐 힘만 생겨도 스스로 일어서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2세부터는 "내가, 내가"를 외치며 자율성이 움직인다. 또래와 놀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위기와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도 길러지기 때문에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의연하게 자기 앞길을 나갈 수 있다.

자녀의 자립본능 존중해야

부모가 자녀의 자립 본능을 무시하고 보호 본능을 과시하면, 자녀는 부모에게 고마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사랑을 위장한 부모의 간섭과 보호가 반복될수록 자녀는 사소한 일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문제에 직면하여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기회마저 잃게 된다. '자녀 특채사건'의 당사자들도 홀로 설 수 있었던 자녀의 앞날을 망친 자신이 가장 후회스럽고 가슴 아프리라.

이제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의 역량을 믿고 자율성을 후원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는 공정한 가족에서 출발하고, 그 출발점은 자녀의 자립본능을 존중하고 부모의 보호본능을 자제할 수 있는 공정한 부모자녀관계이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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