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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20·끝> 시즌즈 셰프 박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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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20·끝> 시즌즈 셰프 박효남

입력
2010.09.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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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 흙 밟고 풀 뜯고 놀러 다니던 기억이 어린 시절 재산이에요. 8월에 태어난 소띠라서 일을 많이 합니다. 일복은 타고 나서 평생 잠 잘 시간이 부족하게 살아 왔지만 무엇을 하든 늘 그 공간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해 왔어요."

지금은 '스타 셰프'라는 표현이 흔해졌지만 훨씬 앞선 10여 년 전부터 이미 팬이 생겨나기 시작한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의 박효남 셰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맛을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라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늘 이야기해 왔다. 특히 예술직의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절대적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화가나 음악가들을 보면 어릴 적 살았던 곳, 가족관계, 교육방법 등이 그가 자라서 만들어 내는 화풍이나 음악적 특성에 잘 녹아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술직의 하나로 인정받는 요리도 그렇다 할 수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나고 자란 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도심 특급 호텔의 임원직에 오르고, 한국 프랑스 요리의 선생님이 되고, 외국 국빈급 만찬을 지휘하는 수장이 된 지금도 맨 땅을 내달리던 그 감촉과 풀 냄새, 물 흐르던 소리와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던 자동차 뿌연 먼지가 영원한 영감이다. 그래서 그의 요리에는 허세 대신 진심이 담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프랑스 요리의 기본을 따랐는데, 먹고 나면 무언가 친숙하고 다정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단 있는 시골 아이였던 박 셰프는 1970년대 말 막연한 희망을 안고 주방에 입문하게 된다. 그 때 만났던 서양인 셰프의 손끝에서 척척 만들어지던 프랑스 요리는 그를 매료시켰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이 성격에 맞았어요. 주방에서 몇 시간을 끓이고 고아서 진액을 만들고는 그것을 기본으로 깊은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제게는 프랑스 요리가 일이 아닌 도취의 대상으로 시작되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프랑스 요리 인생은 83년 힐튼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시즌즈(02-317-3060)의 오픈으로 이어진다. 힐튼호텔 입사 당시 주방의 수장이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조셉 하우스 버거 셰프를 스승이라 말하는 박 셰프는 요리를 위해 헌신하던 스승의 자세가 그를 감동시켰다 말한다.

자연과 벗하며 자란 소박함에 요리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더해지면서 박 셰프의 요리는 제 맛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커다란 호텔식당이지만 늘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인의식 없이 출퇴근만 하는 요리사는 철새와 같이 쓸쓸한 존재에요. 이 주방의 주인은 나라는 마음을 먹으면 손님들과의 관계를 저절로 쌓게 됩니다."

주방에 있는 요리사와 홀에 앉은 손님은 일면식이 없는 가운데 한 접시의 요리로 소통을 한다. 먼저 요리가 나오면 손님의 입장에서는 요리사의 입맛이나 취향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며 식사를 마치고 주방으로 되돌아온 접시를 보면 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어렴풋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손님마다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기억하고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음 번 제 주방에 오시면 기억했던 대로 음식에 변화를 줘서 대접을 했지요."

지난 번 그 메뉴를 똑같이 주문했는데 무언가 내 입맛을 배려한 변화가 느껴질 때, 손님은 소스까지 빵으로 찍어 먹고 싹 비운 접시로 감사를 표한다. 때로는 셰프를 직접 보고 인사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온전히 손끝과 혀끝으로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요리다.

유행이 변하고 손님들의 입맛도 변하게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 셰프는 책을 많이 보고 세계 음식의 추세를 찾아 두루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셰프 본인이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장(醬). 프랑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우리나라 고유의 맛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는데.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자라면서 입에 배어 있는 것은 장이니까요. 우리 음식을 어떻게 하면 프랑스 요리처럼 세계적인 미식가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생깁니다."

하루 중 자는 시간을 3시간만 두고 나머지를 음식 공부에 매달리는 셰프는 "내가 좋으니까 힘든 것을 모르겠다"는데. 그렇게 연구한 레시피로 국내외에서 유수의 만찬을 이끌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월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의 만찬이었는데, 메뉴는 한식이었다고.

"한국 음식과 프랑스 요리는 진한 맛을 살린다는 점과 우아하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실제로 지난 8월 만찬에서 비제이 싱이나 타이거 우즈 같은 유명 선수들이 한식을 먹고 난 후 기립박수를 쳐 주셨을 정도로 한식은 가능성이 가득한 맛입니다."

우리 음식이 널리 알려지면 따라서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 우리 농산물이다. 우리 농산물을 해외 요리사들이 찾게 되는 날, 그만큼 우리의 국력도 커져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박 셰프는 프랑스 요리?만들 때에도 대부분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고 있다.

세 자제 가운데 둘은 국악을 하고, 한 명은 조리과학고에 재학 중이라는 셰프는 공부에 관한 강요를 하지 않는 것이 그의 교육 방법이라고. 그가 차곡차곡 모아온 모든 손맛의 비결은 꼭 내 자식이 아니어도 열정이 있는 요리사라면 누구에게나 전수할 생각이란다.

"요리사는 맛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요리는 프로의 세계이고, 그 세계에서 무기는 혀 아닙니까. 혀를 관리하는 것은 프로의 생명이지요."

박 셰프는 실제로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건강관리를 위해 배드민턴을 치거나 등산을 가는 등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긴장의 연속인 주방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필수. 늘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로 손님들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다.

"내 음식에 돌아오는 반응은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방에서는 누구나 경쟁자에요. 그 가운데 오픈 마인드인 사람, 그리하여 어떤 피드백이나 코멘트도 자기 발전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주방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 아닌 계획이라는 박 셰프는 물과 불과 모든 기물을 벗 삼아 익어가고 싶다고. 프랑스 요리 경력 30년의 셰프가 우리 농산물과 발효 음식을 또 어떻게 세계에 알려줄 지 기대하는 내게 박 셰프가 들려준 앞으로의 계획은 흙길을 내달리던 그 시절처럼 소박한 것이었다.

■ 파마산 치즈를 올린 조갯살과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 10개(이 중 6개는 반으로 잘라 놓는다)

살짝 삶은 관자살 3개

위 관자살을 살짝 버무릴 양의 바질 페스토

(바질, 파마산 치즈, 올리브 오일, 마늘 약간을 섞어 믹서에 간 것)

얇게 슬라이스한 파마산 치즈 3장

가니시용 바질잎 1장

크림 100㎖

젤라틴 5장

1. 아스파라거스 4개를 준비된 크림에 조린 후 믹서에 블렌딩한다. 젤라틴 5장을 넣어 녹인 다음 얼음물에 식힌다.

2. 원형 몰드의 안쪽 벽에 반으로 자른 아스파라거스를 돌려 붙인 후 1로 몰드 속을 채운다

3. 접시에 2를 놓고 몰드를 제거한다

4. 바질 페스토에 버무린 관자를 3 위에 토핑한다.

5. 슬라이스된 파마산 치즈를 사진처럼 겉에 두른다

6. 바질로 가니시한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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