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6년 전라도 나주에서 한 여인의 신분을 놓고 소송이 있었다. 소송을 낸 양반 이지도는 이 여인을 양인이라 주장하고 여인은 스스로를 노비 신분이라고 항변했다. 이 소송에 비친 조선 중기 사회상이 25일 오후 8시 방송되는 KBS1 TV'역사스페셜'에서 소개된다.
다물사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의 사연은 학봉 김성일(1538~1593)이 남긴 글로 전해진다. 경북 안동시의 학봉 종택에는 1만 5,000여 점의 유물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는 오늘날의 판결문에 해당하는 결송입안(決訟立案) 6건도 포함돼 있다. 김성일은 목민관 시절 공정하고 신속한 판결로 명성을 떨쳤다.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사연은 그가 나주의 수령으로 지내던 때의 일이다.
1586년 3월 12일 이지도는 여든 살이 넘은 다물사리의 신분을 밝혀달라고 소송을 냈다. 조선 사회에서는 양인 여자가 노비 신분의 남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남자 노비 주인의 소유로 삼았다. 다물사리는 이지도의 집안 노복과 결혼해 자식들을 뒀는데, 다물사리가 양인임이 증명되면 이지도는 그 자식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물사리는 자신이 성균관 소속의 관비 출신이라고 강변한다. 조선은 부계 사회였지만 노비들끼리 결혼해 낳은 자식은 모계 혈통을 따른다는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양인 출신이든 성균관 관비 출신이든 자식들이 노비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은 마찬가지지만, 다물사리는 어떻게든 자식들을 관비로 살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제작진은 공공기관에 소속된 노비와 개인 소유 사노비의 삶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다물사리 소송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 노비들이 문서를 조작해 신분을 바꾸는 범죄인 투탁(投託) 등 조선시대 질곡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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