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이틀 앞둔 20일 서울 노량진동의 학원가는 전운이 감돌았다. 내달 23일 중등임용고시, 해양경찰공무원시험 등 국가고시를 겨냥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이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 역시 귀성 분위기를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주요기업의 하반기 채용이 이달 말부터 시작돼 많은 졸업예정자들이 고향 길 대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한가위의 들뜬 분위기를 애써 멀리하려는 이들 취업준비생들의 몸부림에서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섭섭함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극심한 취업난을 뚫으려는 치열한 의지가 묻어났다.
서울 노량진동 속칭 고시촌. '명절 첫날을 훈훈하게 하는 영어강좌', '명절, 내 실력을 키우는 시간' 등 고시학원들은 앞다퉈 추석용 프로그램을 개설,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21일부터 행정법 및 영어, 한국사 무료특강을 하는 I고시학원은 이미 전 강의 좌석예약이 매진된 상태. 이 시기 헌법, 교육학, 영어 특강을 하는 인근 N행정고시학원도 모집수강생이 100명씩인 강좌의 80%이상 예약이 찼다.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선종(25)씨는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고 싶긴 하지만, 시험준비 때문에 추석에도 공부할 곳을 찾고 있다"며 "집에서 쉬는 것보다 나와서 한 문제라도 더 풀어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위해 추석특강을 신청한 김현채(27)씨는 추석연휴에도 24시간 중 수면과 식사시간만 빼고는 특강 수강과 시험공부로 온통 도배질이 된 일과표를 짰다. 김씨는 "추석 연휴라 마음이 풀어지면 학습리듬이 깨져 더 모질게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고시학원 관계자는 "황금 연휴가 이들에게는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학원 수강생의 50%가 지방학생들인데, 대부분이 집에 내려가지 않고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5 년간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9)씨는 "친지의 눈치가 보여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보지 못한 지가 3년째"라며 "오는 설에는 부모님을 떳떳하게 뵙고 싶다"고 취업에 대한 간절한 의지를 드러냈다.
연휴 직후부터 시작되는 주요 대기업의 채용일정으로 대학가 졸업예정자들의 발도 꽁꽁 묶였다. 김모(23∙한국외국어대 4학년)씨는 "당장 내달 3일 취업에 필요한 영어자격증시험(OPIC)을 치러야 하는데 추석 연휴에 쉬면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추석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행정고시 필기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서모(24∙고려대 4학년)씨도 "백수로 고향에 내려가느니 떳떳하게 취직을 해서 내려가고 싶다"며 "올 추석은 도서관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방이 고향인 서울 거주 구직자 34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에 고향에 가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30.1%나 됐다. 이들의 절반이 '취직을 못해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부담스러워서'(31.7%), '취업준비를 계속하기 위해서'(13.5%) 등 취업을 이유로 들었다.
이 때문인지 올 한가위에는 단체 귀성 신청자도 줄었다. 서울대 귀성버스 신청자는 지난해 300명에서 올해 230여명으로 줄었고, 연세대 등 서부지역대학연합 귀성버스 신청자도 지난해 1,200여명에서 올해 600명으로 50%나 감소했다. 몇몇 대학은 신청자가 적어 아예 운영이 취소됐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