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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주연은 무조건 서울말?

입력
2010.09.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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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극장가를 찾은 '무적자'의 주인공 혁(주진모)과 영춘(송승헌)은 부산에 터를 잡은 탈북자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국제 무기밀매조직의 핵심인 이들은 모델, 배우 뺨치는 패션 감각을 지녔다. 보잉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착 달라붙은 고급 정장으로 몸을 휘감은 그들을 보면 정말 탈북한 지 3년밖에 안됐을까 짙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그들의 말랑말랑한 서울(부산도 아닌) 말씨가 귀에 거슬린다. 간혹 흥분할 때 북한 말투가 말꼬리에 살짝 묻어나지만 그들의 말은 서울 뒷골목 사내들과 큰 차이 없다(누군가는 아마 그들이 남파교육을 철저히 받은 공작원 출신이라 그럴지 모른다는 인심 좋은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마 감독과 제작자는 도회적 매력이 넘쳐나는 미남 배우들이 거칠고 낯선 북한 말투로 연기하면 여성 관객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 듯하다. 대사 전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고민을 한 듯도 하다. 주인공이 탈북한 지 몇 년이 됐어도 여전히 투박하게 "이 보라우"라 말하던 탈북자 로맨스 '국경의 남쪽'이 2006년 남긴 흥행 실패를 타산지석 삼았을지도 모른다.

김태희 양동근 주연으로 역시 추석시즌을 겨냥한 경마 로맨스 '그랑프리'는 80% 가량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제주도 사투리보다 서울 말에 가깝다. 단지 어린 소녀 하나만이 제주도 말을 해석 불가능하게 웅얼거릴 뿐이다. 2007년 개봉해 700만 관객이 찾은 '화려한 휴가'의 사투리 활용법도 별반 차이가 없다. 계엄군의 부당한 시위 진압에 맞서 봉기를 주도하는 주인공들은 말쑥한 서울 말을 쏟아낸다. 단지 조연들만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입에 올리며 양념 역할을 다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고 속에 자리잡은 언어 패권주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부 영화인들은 영화 속 중심인물은 꼭 서울 말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물론 영화 속엔 현실과 다르지만 현실감을 부여할 수 있는 영화적 시간이 있고, 영화적 상황이 따로 있다. 그러나 부산 사투리가 진하게 배었던 '친구'가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 향토색 물씬 풍기는 명대사가 없었다면 '친구'의 떠들썩했던 흥행 신화는 오래 전 시간 속에 묻혔을지 모른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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