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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평양의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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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평양의 보름달

입력
2010.09.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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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은 유난히 일찍 명절 분위기와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가을 수확의 고마움을 먼저 조상님께 고하는 본래의 의미는 흐릿해졌지만, 조상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이동 대열에 끼지 않은 이들도 마음이 설레고, 추석날 밤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떴는지 창 밖을 내다볼 것이다.

이런 시절에 '평양의 보름달'로 운을 떼면,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동포 이야기로 짐작할 법하다. 애틋한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일깨우고, 당장 쌀 지원을 늘리라고 다그치는 글로 여길 것이다. 마음만이라도 풍성한 민족 최대 명절에 어려운 이웃과 동포를 돌아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3대 세습의 실체 바로 봐야

그러나 그보다는, 실체를 가린 구름이 곧 걷힐 듯 말 듯한 북한의 3대 권력세습과 유력한 후계자라는 김정은(27)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저들이 '민족의 태양'으로 추앙하는 위대한 수령이나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는 분명 이른 듯하지만, 그 음덕과 후광으로 한가위 보름달처럼 떠오르고 있다는 인물이다. 막연히 북한 동포와 대북 정책을 논란하기보다는, 그 '평양의 보름달'을 제대로 살피는 게 나을 것이다. 북한의 4대 명절인 9ㆍ9절, 정권수립기념일 즈음에 이뤄질 것이라던 후계 공식화가 어떤 연유에서든 불발로 끝난 마당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저런 소식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김정은을 실제 3대 세습 후계자로 떠받들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지난 해부터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따위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보면 제법 그럴 듯 하다. 국내 전문가들도 대체로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아주 불합리하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형편에 보수 쪽은 북한의 속성에 걸맞은 행태로 치부하고, 진보는 북한의 부정적 속성은 애써 외면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듯하다.

어쨌든 김정은 후계 결정론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그를 김일성과 김정일을 빼닮은 절세의 위인, 천재적 선군 영장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른바 주체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책임감과 위인적 천품을 지녔으며, 천재적 군사지략을 일찍부터 과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 군사과학과 컴퓨터공학 및 문화 예술 체육 분야에 이르는 탁월한 지식과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선전한다고 한다. 모두가 북한 체제를 탁월하게 이끌 영웅의 자질이다.

상투적 선전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수령과 지도자 동지를 '꼭 빼 닮았다'는 대목이다. 북한 주민이 여기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친북학자 가운데는 이미 "김일성 부자를 빼 닮은 김정은은 키가 크고 한층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민족의 태양'에는 미치지 않더라도, 북한의 앞날을 환하게 밝힐 한가위 보름달 같은 존재로 치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북한 전체주의 체제가 '생체정치(Biopolitics)'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이론에 비춰 보면, 그저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김일성ㆍ 김정일 부자는 평균적 북한인보다 뚱뚱하다. 또 키와 얼굴 등 겉모습에 차이가 크다. 그러나 동상과 초상화 등의 예술적 이미지로는 거의 흡사하다. 몸집은 물론이고 온화한 미소, 흰 치아와 붉은 입술, 어린이 같은 핑크 빛 볼 등을 빼 닮은 듯 묘사하는 사실에 이르면, 위대한 수령의 '영생불멸'을 넘어 자기복제(複製)적 권력세습을 통해 체제를 지탱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거짓 태양과 보름달 사라지기를

북한이 다시 자기복제와 권력세습을 관철할 수 있을지 내다볼 재주는 없다. 다만 북한 주민들이 황당한 자기복제와 권력세습에 길들여져 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그저 한가위 보름달 구경하듯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북한 동포들의 처지를 진정 애달프게 여긴다면, 마냥 쌀과 인도적 지원을 외칠 일이 아니다. 이제는 평양 하늘의 거짓 태양과 보름달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원할 때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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