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총'을 잡았다. 권 사장은 지난 16일 회사 집무실 대신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주유소를 찾아 직접 주유원으로 일했다.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4시간 동안 고객의 차에 직접 기름을 넣어주고 모든 고객들에게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기업들이'현장 속으로!'를 외치고 있다.'책상물림'인 사무직 직원들을 현장에 보내 육체노동을 하도록 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신입사원 교육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로 진행되던 현장체험이 이제는 최고경영자(CEO)까지 직접 참여하는 중요 일정으로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다.
권 사장이 주유소를 찾은 것은 오일뱅크의 현장 체험 프로그램 때문이다. 오일뱅크는 최근 모든 임직원이 직영 주유소에서 매년 주유원으로 연간 30시간 이상 현장 근무토롤 했다. 이에 따라 권 사장을 필두로 1,000여명의 임직원이 연말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현장 근무에 나서게 됐다. 물론 시급도 받는다. 오일뱅크는 연말까지 총 7,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이들의 시급을 모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직접 배를 용접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입사한 대졸 공채 신입사원 77명을 울산 조선소로 보내 지난 6일까지 용접과 철판 절단 등 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 1991년부터 20년째 계속되고 있는'장인혼'교육의 일환. 사원들은 산업명장, 기능장 등 현대중공업의 전문 기능인으로부터 직접 용접 등 기술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글로벌 종합중공업 회사로 성장하기까지 밑거름이 됐던 장인정신을 체험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장인혼'교육을 받은 신입사원 박정윤(23ㆍ여)씨는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 작업이 힘들었지만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CJ GLS는 고객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택배 배송차량에 태웠다. 이 회사는 지난달말부터 지난 3일까지 20여명의 고객센터 신입사원을 하루 동안 택배 차량에 배송기사와 동승시켜 직접 고객들에게 물품을 배송하는 체험을 하도록 했다. 이들이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만큼, 택배 업무 절차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한진해운은 사무직 사원들에게 컨테이너선 승선 체험을 주고 있다. 지난달에도 신입사원 8명을 상하이행 6,500TEU급 컨테이너선에 승선시켜 컨테이너선적, 기관실 견학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사무실 업무가 기업 운영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생산 현장이나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영업 현장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답은 결국 현장에 있는 만큼 임직원의 현장 경험 프로그램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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