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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서 여섯 번째 한가위 맞는 기륭전자 노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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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서 여섯 번째 한가위 맞는 기륭전자 노조원들

입력
2010.09.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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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보면서 같은 소원 6년째 빌게 됐어요. 이제는 우리 소원을 들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한가위 귀성 행렬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옛 기륭전자 공장 부지 앞. 4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에서 2005년 초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기륭전자 직원으로 일했던 유흥희(40)씨를 만났다.

그는 그 해 8월 해고를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비정규직 해고 근로자가 됐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3개월, 길어야 7~8개월 일하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 ‘눌러앉았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지며 그 곳에서 6년째 버텨온 생활. 같은 곳에서 같은 목소리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그는 또 한 번의 한가위를 맞아 “보름달을 보며 언제 이뤄질지 모를 소원을 빌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씨가 거주하는 컨테이너에는 그를 포함해 10명이 살고 있다. 8명의 비정규직 해고 근로자와 생후 1년이 갓 넘은 2명의 갓난아기. 2005년 당시 함께 했던 200여명의 동료 중 이들을 제외하고는 각각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갔다. 일부는 회사에서 주는 위로금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7시, 농성장에서 나와 현재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거리 시위를 한다. 하지만 올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앰프를 60데시벨 이하로 하라”는 명령이 나와 이제는 큰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외치지도 못한다. 일반적으로 조용한 사무실의 소음이 50데시벨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에 대한 세간의 반응 역시 ‘무관심’. 정규직으로 다시 기륭전자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에 출근하는 기륭전자의 직원을 포함해,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기륭전자는 위성방송 수신기와 디지털위성라디오, 네비게이션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유씨 등 노조원들과 이 회사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2005년 계약 기간 만료와 더불어 비정규직 근로자의 재계약을 거부한 사측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선택한 노측이 정면으로 부딪히면서부터다.

그 후 집회와 대화, 결렬을 반복하며 흐른 시간이 이날로 1,853일째다. 여전히 유씨 등 노조원은 ‘비정규직 해결, 정규직으로의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분회장 김소연(40)씨는 “몇 년째 복직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제 회사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회사의 입장은 다르다. 기륭전자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계약 연장은 고용자의 선택이다. 또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그들을 몇 년간 시위했다고 해서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들은 우리가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노사의 주장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유씨를 포함해 오늘도 좁은 컨테이너에 몸을 뉘고 있는 10명 역시 자신들의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김씨는 “현행 파견근로자법 상 우리 같은 처지의 파견근로자들이 보호받기 어렵다. 우리도 승산이 없다는 것은 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이처럼 오랫동안 불편하고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을까. “최근 대법원이 2년 이상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한 파견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2년 이상 근무할 수 있는 파견근로자는 거의 없다. 사측에서 2년이 되기도 전에 계약을 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번 한가위에도 이들은 컨테이너 옥상이나 옛 공장 정문에서 차례를 지내고 함께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 작정이다. 강화숙(40)씨는 “이제 안 먹고, 안 쓰고 버티는데 이골이 났다. 다만 우리 문제가 빨리 해결돼 정상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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