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무조건 동경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조금 비판적인 견해를 견지해왔다. 그런 내가 미국을 정말 부러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의 생활 속의 유머 감각이다. 미국인들은 유머 감각을 잃는 것을 인생을 마감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출한 작가들이 여럿 있겠으나 내가 접한 작가들 중에서 나는 단연 마크 트웨인을 미국적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작가로 꼽는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장난이 넘쳐나고 부당한 권위 따윈 유머러스하게 살짝 밟아주는 통쾌함이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나 고민하던 중, 최근에 트웨인의 를 다시 찾아 읽었다. 처음 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이다. 서점에서 발견하고 너무나도 재미있어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는데도 굳이 책을 사갔던 기억이 있다. 트웨인의 아담과 이브는 일반 상식과 전혀 다르다. 미시시피 강 유역의 평범한 남자와 장난기 많은 아가씨일 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수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의 원조 격이면서 장난이 가득하고 상상과 해학이 넘쳐난다. 죽음을 세상에 끌고 온 원죄의 씨앗일 뿐으로 알고 있는 그들이 트웨인의 손을 거치면서 평범하고 재미있는 장난꾸러기 미국인들로 살아 움직인다. 트웨인은 정해진 틀을 벗어남으로써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조상으로 아담과 이브를 다시 창조해내었다.
우리 선조들에게도 해학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먹고 사는 일에만 급급하고 거대담론들만이 넘쳐난다. 식민지와 전쟁, 군부 통치를 거쳐오면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문제는, 과학자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어야 큰 사고를 칠 수 있고 역사에 남을 수 있다. 어린 애같은 마음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과학하는 사람 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자. 기획된 입시의 틀에 따라 성실하게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최고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는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뽑을 수 없으니 사실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학인 셈이다. 성실성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머리도 좋으나 가지 말라는 길로는 절대 가본 적 없는 엄친아 엄친녀들이 넘쳐나는 곳이 우리의 대학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도전도 상상력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살도록 강요 받다 보니 아무리 우등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도 자신보다 잘난 것 같은 사람이나 높은 권위 앞에서는 기가 죽고 만다. 그래서인가. 남이 해놓은 일은 죽어라고 해서 따라잡지만 자신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아이팟, 아이패드는 못 만들어도 그것을 따라 만드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마크 트웨인이 과학을 했다면 과학계의 스티브 잡스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난 과학,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풀어내지 못한 걸 장난치듯이 풀어 설명해 내었을 것 같다. 즐기면서 과학을 하는 것은 좋은 유머 감각을 가진 것과 비슷하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남을 모두 재미있게 하려고 해본다면? 알고 싶은 것은 당연히 질문하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의 논문이라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기지 않을까?
한국 과학계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미래 과학자들이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기를 살려주는 일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가 항상 고민이지만 말이다. 마크 트웨인처럼 생각하고 잡스처럼 이뤄내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을지.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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