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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가면올빼미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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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가면올빼미 우는 밤

입력
2010.09.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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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밤, 세간도 다 풀지 못하고 이사온 집 뜰에 빈 새장을 건다 혼자 변기에 앉아 오줌누던 아기가 운다, 울면서 나를 부른다 검은 숲에서 새가 운다 만져지지 않는 소리를 따라 숲을 헤맨 적 있었다 귀는 뒷산으로 열리고 변기 속 탁한 물에서 금붕어가 파닥인다 뚜껑 열린 락스병, 아이의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등을 두드린다 쏟아지는 긴 새 울음소리, 밤의 응급실, 구급차에 실려온 늙은 여자, 입가에 흘러내리는 거품, 파닥이는 파란 고무 슬리퍼, 의사는 위를 세척해야 한다고 하지만

씻어낸다고 다 걸러지는 건 아니지 매시간 천 톤의 바다를 거르는 심해상어의 갈퀴아가미, 오랜 눈물의 퇴적물이 수천 톤의 물에 녹아 있는 조간대숲, 나무의 물관을 도는 물의 첫 기억까지도 그들이 걸러낸 것은 무엇인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염전의 바닷새, 눈밑 검은 졸음을 단 새떼들이 짠내를 풍기며 지상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껌뻑인다

물비린내가 몸을 감는 밤, 지독한 밤의 아가리가 안개를 삼킨다 안개의 포식자, 낮과 밤의 짐승들이 안개 속에서 이를 간다 어둠은 그대로 어둠일 뿐, 그러나 안개가 걸러낸 것은 무엇인가 산란기가 되면 드라이아이스처럼 폭발하는 암수한몸의 산호초, 안개의 밤이면 몸속 오랜 유전자지도를 찢고 암수한몸의 내가 된다

지붕 위에서 잠자던 고양이는 어째서 돌아올 때도 그대로인가 지붕을 두드리는 비는 어째서 공중을 향하는 지상의 발포 소리를 닮았는가 안개를 통과한 자웅동체의 내가, 내 안의 남자와 여자를 불러내 지독한 목구멍 안에 갇혀 있던 안개 목소리로 가면올빼미 울음을 운다

● 어렸을 때, 아침에 골목에서 "재치국 사이소!"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국거리로 고민하시던 어머니는 제게 돈을 쥐어주며 심부름을 보냈죠. 저는 냄비를 들고 그 목소리를 향해 달려가서 재첩국을 샀습니다. 끓인 뒤,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국이었죠.

어제 우연히 재첩순두부라는 걸 먹는데 그때 일이 생각났어요. 그 많던, 그래서 우리 집 앞에까지 와서 팔리던 재첩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요? 강의 모래는 세균을 거르고, 모래 속의 재첩은 플랑크톤을 거르고, 모래를 밟고 선 사람들은 재첩을 걸렀는데, 거기서 재첩이 빠진다면 영영 사라질 게 한두 가지는 아니겠네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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