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서준환(40)씨가 등단 9년 만에 쓴 첫 장편소설 (뿔 발행)은 제목을 통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와의 연관성을 내비친다. 굴드는 바흐가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독창적으로 연주한 음반을 1955년에 발표, 단숨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굴드는 바흐 등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 시대의 작곡가들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고, 피아노 음색을 하프시코드에 가깝게 하려고 음의 잔향을 남기는 페달을 밟지 않았다. '피아노를 싫어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이 역설적 존재가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소설'을 추구하는 작가 서씨의 관심사와 맞아 떨어지면서 이번 소설은 태동했다.
굴드의 전기적 사실은 작품 곳곳에 반영됐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피아노 의자만 고집하고 한여름에도 두터운 외투를 입는 등 굴드를 기인(奇人)으로 소문나게 했던 면모가 에피소드로 쓰였고, 그가 글을 쓸 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종종 가상 인물을 창조해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했던 일은 소설의 핵심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전기소설로 볼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역사적 인물로서 글렌 굴드는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작가들 가운데서도 의미 전달을 넘어선 언어의 가능성에 유난한 관심과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서씨에게 최적화된 '소설적 도구'일 뿐이다.
이 소설의 서사는 겹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글렌 굴드가 있고, 그가 자기 소설의 화자로 창조한 피아니스트 길렌 골드문트가 있고, 골드문트가 창조한 글렌 굴드가 있다. 이 세 겹의 이야기엔 경계와 위상이 분명치 않다. 골드문트가 굴드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대목도 있고, 작품 말미에선 두 굴드가 나란히 포개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의 주제 의식을 담은 부분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것은 굴드가 골드문트를 주인공으로 한 글에서 시도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음표 대신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굴드의 소설 속에서) 골드문트는 가상 도시 비히니스부르크에 있는 골드베르크재단의 지원을 받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어로 새롭게 연주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구약성서 속 인물 요나를 모티프 삼아 주제 선율인 아리아를 직접 집필한 그는 음악가, 언어학자, 동화작가, 성악가, 방송 프로듀서, 악기상, 문예창작과 교수 등 15명을 섭외해 각자에게 아리아를 언어로 변주하는 작업을 맡긴다. 순수 언어로 이뤄진 주제 선율과 15개의 변주곡, 이것이 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고갱이다.
시로, 동화로, 소설로, 희곡으로, 과학적 보고서로, 짧은 메모로, 심지어 한자로 나열된 '해독 불가의 방언들'로 다양하게 표현된 이 '언어 변주곡'에는 음악과 언어, 나아가 예술 전반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통찰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이훈성기자 hs032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