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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며느리 봉사단'/ "딸이나 다름 없지… 명절도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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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며느리 봉사단'/ "딸이나 다름 없지… 명절도 외롭지 않아"

입력
2010.09.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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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니 오늘 어디 가시는데 이리 예쁘게 차려 입으셨대." "명절 때가 되니 여기저기 부르는 데가 많구먼."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설렁탕집 우가촌. 꽃무늬 분홍색 모시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유재분(75) 할머니에게 장남춘(50)씨가 농을 건네자 유 할머니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영락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니 더욱 살가운 친정엄마와 딸의 모습. 서로 "엄니" "우리 어멈"이라고 부르지만 둘은 실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남이다.

내 며느리가 최고에요

유 할머니와 장씨가 '엄니' '어멈'의 관계를 맺은 건 2008년. 마포구가 관내 홀몸노인들이 질병 등 위급상황으로 긴급상황이 생겨도 방치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홀몸노인을 직접 방문해 안부를 묻고 돌보는 '며느리 봉사단'을 만들면서부터다. 유 할머니는 "처음 찾아왔을 땐 서먹서먹했는데 자꾸 보니 정도 들고 하나하나 챙겨주니 지금은 딸이나 다름 없지 뭐"라고 말했다.

유 할머니에겐 자식이 없다. 23세에 시집을 갔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결혼 3년 만에 시댁에서 쫓겨났다. 두 번째 결혼에서 전처의 남매를 키웠지만 이들과 연락 없이 지낸 지도 30년이 넘었다. 2002년 남편과 사별한 뒤로는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수급생활자에게 나오는 월 38만원으로 홀로 지내고 있다.

이런 유 할머니에게 장씨는 딸이자 며느리. 남편 윤순국(58)씨와 가게를 운영하는 장씨는 틈나는 대로 식당에 모셔와 설렁탕을 대접하고 가족행사에도 초대해 함께 지낸다. 장씨는 "장사는 잘 되는지 걱정해 주시고 집에서 키운 콩나물도 갖다 주시는데 누가 누굴 보호하는지 모를 지경"이라고 웃었다. 유 할머니는 이날도 감자며 매실 즙이며 양손 가득 먹을 거리를 챙겨 가게로 가져오는 길이었다. 장씨는 "올해 생신(음력 8월11일) 때는 홍삼이라도 해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온천 여행, 목도리 장갑 전달도

공덕동에는 장씨마냥 효부인 며느리 봉사단이 45명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최명숙(58)씨와 임동희(61)씨가 그렇다. 30년간 여러 명의 홀몸노인을 돌보고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학비를 보태주기도 한 최씨는 2006년 구민상을 받았다.

7년째 통장으로 활동해 온 임씨도 김영애(84) 할머니를 돌봐주고 있다. 김 할머니에겐 딸이 한 명 있지만 소아마비를 앓고 있어 오히려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처지다. 임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어서 이것저것 도와드리고 싶은데 부담스러우신지 가끔은 꺼려하시기도 해요"라고 했다. 임씨는 "공덕동에는 유난히 홀몸노인들이 많은데 파지를 주워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마포구에 따르면 재개발이 진행 중인 아현뉴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홀몸노인 거주 비율이 13%(1,156명ㆍ6월 말 기준)로 관내에서 가장 높다. 상덕규(57) 동장은 "사회가 고령화하면서 홀몸노인들이 늘어나는데 위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해 안타까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며느리 봉사단이 지역 내 어려운 어르신을 살피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공덕동 며느리 봉사단은 이 외에도 일 년에 두 차례 홀몸 노인들과 온천나들이 여행을 하고, 수제 돈가스 판매 행사를 통해 생긴 수익금으로 목도리 장갑 등을 선물하고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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