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어제 개성에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 일정과 장소를 협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상봉 장소가 걸림돌이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가 당연한데도 북측은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지 않은 채 '금강산 지구내'로만 하자고 고집했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에 쓰였던 면회소는 금강산 지구내 다른 남측 시설들과 함께 북측이 몰수 딱지를 붙인 상태다. 북측 대표단은 이산가족 면회소 사용은 해당기관에서 별도로 협의할 문제라고 주장했다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압박하는 꼼수일 가능성이 높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면서 인도주의적 협력사업이 활성화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게 진심이라면 장소 문제로 제동을 거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북측은 우리가 제의한 이산상봉 정례화나 규모 확대에 대해서도 "남북관계가 풀리고 좀 더 큰 회담에서 협의할 사안"이라며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24일 재개될 실무접촉도 별로 기대할 게 못 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한적십자사 집계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남한 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만 3,685명 가운데 80세 이상이 3만3,989명으로 40.6%에 달했다. 90세 이상도 4,666명(5.6%)이나 된다. 상봉 신청자의 사망률이 34%나 된다는 자료도 있다. 2000년 이후 지난해 추석까지 17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지만 그 숫자는 1만7,100명에 불과하다. 생을 마감하기 전 혈육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고령 이산가족의 비원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상봉을 미루고 제한하는 것은 죄악이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쌀과 같은 물자 지원을 얻어내는 방편이나 대남 공세용으로 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특히 상봉 제의에 이어 군사 실무회담까지 제안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험악한 말로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북측은 얄팍한 계산을 버리고 순수한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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