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야르 지음ㆍ백선희 옮김
여름언덕 발행ㆍ224쪽ㆍ9,800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캐릭터 중 하나인 탐정 셜록 홈즈를 창조한 영국 작가 코난 도일(1859~1930)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지 7년 만인 1894년 단편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의 죽음을 고했다. 런던을 주름잡던 거물 악당 모리아티와 사투를 벌이다가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로 떨어지면서 맞은 장엄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홈즈를 살려내라고 영국 황태자에게까지 편지를 보낸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긴 도일은 8년 후인 1902년 장편 를 발표, 홈즈 시리즈를 재개한다.
깊은 늪을 품고 있는 황무지에 자리한 바스커빌 가문 사람들의 잇따른 의문사를 다룬 이 작품에서 홈즈는 친구이자 조수인 왓슨 박사와 함께 살인범을 추적한다.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범인은 바스커빌 가 인근에서 여동생과 살고 있는 박물학자 스태플턴. 홈즈의 수사에 따르면 원래 바스커빌 가문의 일원이었던 스태플턴은 자기보다 재산 상속 순위가 앞서는 친척들을 제거하기 위해 성(姓)까지 바꾸고 황무지에 찾아들었다. 그가 음모를 감추기 위해 택한 살인 도구는 사납고 덩치 큰 개. 하지만 결국 홈즈에게 덜미가 잡힌 그는 스스로 늪에 뛰어든다.
프랑스 파리8대학 문학 교수인 피에르 바야르(56)는 에서 홈즈를 부활시킨 이 작품을 뒤집어 읽는다. 즉 스태플턴을 살인범으로 지목한 홈즈의 판단은 틀렸으며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홈즈의 날카로운 관찰과 명석한 추리를 믿는, 그래서 스태플턴이 범인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 독자들에겐 충격적인 주장이다. 홈즈보다는 홈즈를 의심하는 자를 의심할 이들을 상대로, 바야르는 스스로 ‘추리비평’이라고 부르는 이 책에서 홈즈의 오류를 차근차근 짚어낸다.
바야르의 주장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그는 홈즈의 추리가 사건의 실체와 어긋나는 사례들을 열거한 뒤 이는 관찰과 비교에 바탕한 홈즈의 추리법에 근본적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홈즈의 추리 중 편견이나 성급한 결론에 의한 부분을 제거한다면 살인범 스태플턴과 그의 개에겐 혐의를 벗을 만한 충분한 알리바이가 있음을 밝힌다.
나아가 바야르는 홈즈가 이 소설에서 진범의 농간에 놀아나는 둔한 탐정으로 그려진 것은 바로 작가 코난 도일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코난 도일이 홈즈를 미워했다는, 귀가 솔깃한 주장을 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정황으로 코난 도일의 발언 등을 소개한다. 요컨대 작가로서 더 근사한 작품을 쓰고 싶었던 코난 도일에게 홈즈 시리즈의 선풍적 인기는 되레 부담이 됐다는 것. 심지어 코난 도일의 어머니까지 하루빨리 홈즈 시리즈를 끝내고 싶었던 아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그랬으니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시 살려낸 홈즈에 대한 그의 감정이 좋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 바야르의 설명이다.
작품 안팎을 오가며 스태플턴의 살인 누명을 벗긴 바야르는 책 말미에서 진범을 지목한다. 그(녀)에게 혐의를 두는 이유에 대한 바야르의 정치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여느 홈즈 시리즈의 결말을 읽을 때 못지않은 전율이 느껴진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관한 오래된 문학적 논쟁에서 “모든 이야기는 생략의 형태로 넓게 열린 (해석의) 공간을 남겨둔다”(84쪽)는 입장과 “세계에 대한 비허구적 묘사와 허구를 가르는 진정한 차이는 없다”(131쪽)는 입장을 각각 지지하는 바야르는, 이로써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창조적 독서’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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