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참상을 절제된 언어로 기록한 회고록 (1947)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ㆍ사진)가 1963년 출간한 두 번째 저작이다.
1945년 1월 러시아 점령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풀려난 레비가 우여곡절 끝에 그 해 10월 고향 토리노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실제 경험담에 문학적 세공을 가한 자전소설로 보는 게 맞겠다. 레비는 생전 인터뷰 등에서 "은 책을 내기 전 수 년 동안 친구들에게 들려준 내 체험담을 모은 것이되 그것을 흥미롭게 여과하고 수정한 것"이라며 "보다 훨씬 의식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출간되던 해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캄피엘로 상의 첫 수상작으로 선정됐는데, 덕분에 자국에선 별다른 반향이 없었던 가 뒤늦게 재출간되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레비의 귀향은 순탄치 않았다. 아우슈비츠에선 나왔지만 러시아군의 이동 캠프를 전전하며 간호사 노릇을 해야 했다. 6월에 드디어 기차로 귀향길에 오르지만 걸핏하면 전쟁으로 끊어진 선로를 만나 열차를 갈아탔고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몇 시간이고 지체해야 했다.
우회에 우회를 거듭하는 이 고단한 여정은 그러나 레비에게 개성 강한 동행들을 만나게 하고 러시아와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사건을 겪게 했다.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답게 레비는 절제된 감정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종전의 흥분과 불안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처신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거침없는 입담과 생활력을 지닌 그리스인 나훔, 군 보급품인 생선에 물을 채워 러시아군에게 비싸게 되파는 체사레, 주인 잃은 말들을 잡아 먹다가 아예 정육점까지 차리는 사람 등 레비의 시선은 때론 우습고 때론 그로테스크하게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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