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사태의 후폭풍이 금융권 전반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당장 정부 일각과 정치권에서 ‘금융사 CEO의 연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어, 상당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신한금융 사태를 두고 적지 않은 금융권 인사들은 ▦후계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중요한 원인이며 ▦여기엔 라응찬 회장의 장기집권이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는 게 엄연한 현실. 때문에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인데, 하지만 신한 사태를 금융자율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빌미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 CEO제도 손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은 금융사 CEO의 최장 재직기간을 규정하는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장기집권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CEO 임기를 8~10년 정도로 제한하자는 것. 고 의원은 “은행법에 따라 주주가 분산돼 있는 은행은 오너가 있는 일반 사기업의 논리를 적용하기 힘들다”며 “정부가 행정지도를 통해 금융회사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 관치이지, 법제화를 통해 CEO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관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16일 신한 사태 관련자 책임론을 주장하면서 “차제에 경영진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상태. 이에 따라 금융위는 임기 제한을 포함, 이번 사태로 제기된 금융사 지배구조 관련 개선방안의 장단점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정부 일각에선 라 회장의 장기집권에 대해 ‘고까운 시선’을 보내온 것이 사실. 소유가 분산된 금융사 특성 때문에 CEO가 주인(주주)의 대리인이 아닌 스스로 주인 역할을 하는 ‘참호구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금융위 안팎에선 이밖에 CEO에 대한 사외이사의 견제 강화를 위해 소액주주들에게도 사외이사 추천권을 보장하는 방안과 함께 현재 은행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행장추천위원회 설치를 법제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법보다 자율 감시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법제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다. 장기집권의 부작용에는 동의하지만, 임기나 임금을 강제로 제한하는 것은 금융사 경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것.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예를 들어 아주 잘 하는 CEO가 있는데 연임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면 기업에 손해가 될 수 있다”며 “정치의 경우는 잘 하는 지도자라도 연임 제한을 하지만 기업은 정치와 다르다”고 말했다.
임기제한을 둘 경우, 우리나라 현실상 관치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CEO의 임기를 법으로 제한하려 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퇴직 공무원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신한 역시 라 회장의 장기집권이 아니었다면,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이 과연 그 자리를 그대로 뒀었겠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법보다 자율감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CEO의 연임 횟수나 나이 상한 같은 것은 법보다 은행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은행이 CEO 선임과 임기에 대한 규정을 만들되 이를 이사회가 관리ㆍ감독하도록 책임을 부여하고 무엇보다 공시를 통해 주주와 외부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쪽으로 법이 규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민간 회사 CEO의 임기나 임금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라며 “다만 국회, 여론 등이 제기하는 개선 과제가 타당한 지 검토해 필요한 부분은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금융사 경영구조법 제정안’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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