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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승병장 사명대사의 외교전략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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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승병장 사명대사의 외교전략 재조명

입력
2010.09.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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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1544~1610)가 열반한 지 올해로 꼭 400년째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한 사명대사는 전쟁 종결을 위해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3차례 회담하고 또 전쟁 후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조선인 송환을 이끄는 등 외교전략가로서 큰 역할을 했지만, 기묘한 도술을 부리는 설화 속 인물처럼 묻혀 왔던 측면도 없지 않다.

경남 밀양 표충사는 10월 9~10일 ‘나라 구하기 사명성사(四溟聖師) 열반 400주기 추모대제’를 여는 등 사명대사 재조명 작업을 본격화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추모대제 봉행위원장을 맡고 26교구 본사 주지 스님들이 봉행위원으로 참여하는 종단 차원의 대규모 행사다.

그동안 표충사와 밀양의 유림이 협력해 영조 때부터 270여년간 사명대사를 기리는 불교와 유교 의례가 복합된 향사(享祀)를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지내왔는데, 10일 열리는 추모제에서도 성균관유도회총본부가 주관하는 다례제와 함께 불교식 추모법회와 영산재 등이 함께 진행된다. 9일에는 표충사 경내에서 사명성사 백일장이 열리고, 저녁에는 가수 태진아 현철 현숙 다비치 등이 출연하는 자비음악회도 개최된다. 사명대사가 입었던 장삼과 가사 등의 유물 전시회, 사명대사의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와 계승 방안을 논의하는 학술대회도 열린다.

밀양 출신인 사명대사는 18세의 나이에 승과에 급제, 32세 때 직지사 주지로 있다가 당시 선종 본찰이던 봉은사 주지로 천거됐으나 사양하고 금강산 보현사에 있던 서산대사를 찾아가 수행했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그의 나이 48세였다. 사명대사는 특히 임진왜란 말미에 명나라와 일본이 체결하고자 했던 명일조약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일본의 재침략 계획(정유재란)을 알아내 대비토록 했다. 표충사 선혜 스님은 “당시 명과 일본이 체결하려던 명일조약은 남북으로 조선을 분할하는 내용으로, 자칫 조선 후기에 분단 상황을 맞을 뻔했다”며 “사명대사는 일본과 명 내부의 세력 다툼을 이용해 이를 막는 등 탁월한 외교적 공적도 올렸다”고 말했다.

선혜 스님은 또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당시 이미 30여년간 전국에서 수행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선승이기도 했다”며 “이번 추모행사를 통해 사명대사의 호국ㆍ구국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선사로서의 그의 면모도 재조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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