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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추석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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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추석 차례상

입력
2010.09.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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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는 음력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을 뜻한다. 계절적으로 봄부터 여름까지 정성 들여 가꾼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는 시기와 겹친다. 하지만 올해 추석에는 풍성한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기가 쉽지 않을 성싶다. 봄철의 이상 저온과 지루한 장마, 이에 따른 일조량 부족으로 생육이 부진한 탓이다. 아내와 함께 둘러본 재래시장에도 설익은 풋과일과 수입산 과일만 넘쳐난다. 지구온난화로 날씨의 변덕이 갈수록 심해진다니 조상들 입맛과 동떨어진 제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 한가위 절식 중 으뜸은 역시 송편이다. 하지만 솔향 머금은 송편을 계속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반도 중부까지 아열대화가 진행되면 강원 산간지방을 제외한 남한지역에선 소나무를 보기 힘들어진다. 조율이시(棗栗梨枾ㆍ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차례로 차리는 격식)도 옛말이 되게 생겼다. 찬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밤은 멸종할 것이고, 배는 개화시기가 빨라져 조상께 올릴 만한 당도와 크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사과의 주산지는 이미 대구에서 영월로 바뀌었고, 온난화가 더 진행되면 고온을 피해 북방으로 달아날 것이다.

■ 추석 차례상의 대표 수산물은 참조기다. 조상들은 조기를 천지어(天知魚ㆍ하늘의 이치를 아는 고기)라 부르며 물고기 중의 으뜸으로 쳤다. 1970년대 8,000톤 가까웠던 참조기 어획량은 현재 1,500톤으로 떨어졌다. 명태 대구 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도 잘 안 잡힌다. 머리가 크고 알이 많아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뜻에서 선호했던 명태의 어획량도 80년대 3만톤에서 요즘 500톤 정도로 떨어졌다. 최근 40년간 한반도 해수온도가 1.03도 상승한 탓이다. 대신 동해에는 오징어 고등어 멸치 해파리 등 아열대성 어종이 몰려들고 있다.

■ "진짜 한가위는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농사를 지은 쌀로 송편과 술을 빚는 날일세(문순태 )."조상들은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차례상에 죽은 신위가 생전에 먹던 신토불이 음식을 정성껏 올렸다. 햅쌀로 빚은 송편과 모양 좋고 알 굵은 햇과일, 평소 먹기 힘든 조기 북어(말린 명태) 등이 주인공이다. 털이 있는 과일(복숭아)은 귀신을 쫓는다는 생각에, '치'로 끝나는 갈치 꽁치 멸치 등은 천하다고 여겨 올리지 않을 만큼 마음을 썼다. 이제 솔잎 대신 바나나잎으로 송편을 찌고, 사과 밤 자리에 멜론 오렌지가 놓일 날이 머지않았다. 조상들이 달라진 차례상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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