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엔고저지를 위해 6년반만에 시장개입을 단행했다. 중국의 위안화 가치도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이 같은 아시아국가들의 가파른 통화절상 배경에는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국제외환시장은 미국과 아시아국가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 결국 개입
15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과도한 환율 움직임을 억제하고자 시장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2004년3월 이후 6년 6개월만에 처음이다. 노다 장관은 “디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고 경제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엔화의 움직임은 일본 경제의 흐름을 저해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면서 “추가 개입을 포함한 과감한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개입 규모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우존스는 엔ㆍ달러 환율이 82엔대로 급락한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일본 외환당국이 24억~36억달러 규모로 달러 매수 개입에 나선 것으로 추정했다. 개입 후 엔화 환율은 급등, 오후 3시 84.87엔으로 마감했다.
이날 일본의 외환시장개입은 간 나오토 총리가 오자와 전 간사장을 누르고 재신임에 성공한 다음날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장개입에 소극적인 간 총리가 승리하면서 엔ㆍ달러 환율은 급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80엔 선마저 위협받게 되자 전격적인 시장개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시장개입은 더 이상 달러화에 대한 엔화가치의 고공행진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뜻. 이는 사실상 자국경기부양을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는, 그럼으로써 엔고을 사실상 부추기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도 위협
미국과 중국간에는 이미 환율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 경제둔화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면서 달러약세 정책을 추진해 왔다. 반면 중국은 6월부터 위안화의 복수통화 바스켓제도에 복귀했지만, 이달 초까지만 해도 위안화 절상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불만이 커진 미국은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지난주 중국을 방문했고, 미 의회도 15~16일 이틀간 위안화 절상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서머스 위원장의 방문 후 위안화 고시 환율을 급격히 떨어뜨림으로써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6.7463위안으로 마감한 14일에 이어 15일 오후 3시(한국시간)에도 위안ㆍ달러 환율은 6.7358위안까지 떨어졌고, 위안화 가치는 4거래일 연속 1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중국도 경기흐름이 점차 둔화되는 상황인지라, 미국만을 의식해 마냥 절상을 용인할 수는 없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지금은 미국에 대한 유화제스처 차원에서 절상을 보고 있지만 중국이 느린 속도의 절상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완만한 속도로 복귀할 것이며 이 경우 미ㆍ중간 환율마찰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 동반 개입?
시장에서는 이번 시장개입이 미국 등과 함께 실시한 공조 개입이 아니라 일본의 단독 개입이라는 점에서 개입 효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JP모건의 사사키 도루 외환리서치헤드는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이번 개입으로 82엔이 저지선이라는 것이 알려진 만큼 이 선이 붕괴하면 역사적 저점인 79.75엔까지 급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개입은 다른 아시아 경쟁국가들의 동반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무라홀딩스의 아시아 리서치헤드인 기노시타 도모는 “일본의 개입 시작은 오랫동안 (미국으로부터) 자국 통화 강세를 용인하라는 압박을 받아 온 중국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SBC의 리처드 예첸가 신흥국 외환시장 헤드는 더 나아가 “일본의 개입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자국 통화에 종종 개입하는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도 ‘필요하다면 강한 개입을 불사해도 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미국과 아시아국가간 대규모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원ㆍ달러환율은 전날보다 0.8원 떨어진 1,160.9원으로 마감됐다. 일본처럼 급격한 변동은 없지만, 8월말(1,198.1원)에 비하면 역시 절상된 상태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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