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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남북 해빙이 미심쩍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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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남북 해빙이 미심쩍은 이유

입력
2010.09.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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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툰드라 지대에도 여름이 오면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다. 땅바닥에 거의 붙은 채로나마 울긋불긋 꽃들도 피어난다. 그러나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60일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 내에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만이 이곳에서 살아 남는다. 기온이 가장 높은 때도 1~2㎙ 아래는 꽁꽁 얼어붙은 영구 동토층이다.

요즘 남북관계에 일고 있는 해빙기류를 보고 툰드라 지대의 짧은 여름을 떠올리면 너무 비관적이지 않느냐고 면박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남북이 주고받고 있는 유화 제스처와 이벤트들의 배경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해빙의 기운이 찾아온 것은 분명 '하늘'이 도운 결과이다. 8월 하순 신의주 지역의 대규모 수해에 대한적십자사가 100억원 상당의 복구물자를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게 시작이었다. 이어 북측의 쌀과 시멘트, 중장비 제공 수정제의와 대승호 송환,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제의, 남측의 쌀과 시멘트 제공 의사 전달 등이 숨가쁘게 이어져 왔다.

하늘이 도운 남북해빙의 기회

17일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수해지원 물품 전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사간 실무 접촉이 개성에서 열린다.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북측은 남측이 주는 쌀 5,000톤과 시멘트 1만톤을 군말 없이 받겠다고 했다. 지난해 옥수수 1만톤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는 '농부의 지게에 올려놔도 시원찮을 강냉이 얼마 타령'이라고 타박을 했던 그들이다.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 것은 쌀 한 가마, 시멘트 한 포대가 아쉬울 만큼 사정이 다급한 탓이기만 할까.

북한의 대남 유화 제스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을 대내외에 보일 필요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달 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안정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협력 및 식량지원을 얻기 위한 전제로 남북관계 개선 등에 성의를 보일 필요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미국도 북미 양자 회담과 6자회담 재개 조건의 하나로 남북화해를 거론하며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압박을 받고 남한과의 화해에 시늉을 보이는 것이라고 의심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 보유를 통한 국가 생존전략을 바꾸려 한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핵 보유의 상징성을 포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대남 인도주의적 제스처를 포함한 북한의 최근 대외 대화 공세는 그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지원도 국민여론과 11월의 서울 G20정상회의 환경 등을 의식한 제한적 조치라는 느낌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진솔한 사과 없이는 대규모 식량지원이나 전면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없다는 외교안보라인의 방침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일각에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재개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그러나 거액의 달러 현금 유입을 뜻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북핵 문제에 결정적 진전이 있기까지 허용할 리 만무하다.

전략ㆍ열정 없이는 정세 못 바꿔

중국과 미국에 기대를 걸 상황도 아닌 것 같다.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회담 재개에 앞장서 노력하고는 있다. 그러나 교착을 타개할 창의적 아이디어나 전략이 없다. 미국은 북한이 진정성을 믿게 할 행동을 보이면 양자회담을 거쳐 6자회담 재개에 응할 수 있다며 분위기를 띄운다. 그러나 북한의 대미불신을 해소할 만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한반도 정세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 기본 토대들은 툰드라지대의 영구 동토층처럼 굳게 얼어붙어 있다. 그 위로 잠시 훈풍이 불어 풍경이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축을 이루는 국가들이 진정성과 열정, 주도면밀한 전략을 갖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국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처럼의 남북해빙 무드에도 비관론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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