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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는 공정거래부터] (3) 현장에서 불고 있는 공정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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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는 공정거래부터] (3) 현장에서 불고 있는 공정 신드롬

입력
2010.09.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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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가 입찰 득보다 실…최적가 새바람

충북 진천에서 기지국용 케이블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원일전선은 지난 3월 SK텔레콤의 제품 입찰에 참가해 꽤 괜찮은 가격에 제품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케이블의 주요 원자재인 전기동(구리)이 지난해 말 톤당 7,000달러이던 것이 올해 들어 톤당 7,500달러까지 올랐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일정부분이 반영된 납품단가를 확정한 것이다.

보통 다른 업체와의 납품 입찰에 참가하는 경우 무조건 최저가로 입찰하기를 요구하지만 SK텔레콤의 경우 '제한적 최저가 입찰' 제도 덕분에 너무 낮은 가격을 써내면 오히려 제품을 납품하기 어렵다. SK텔레콤은 터무니 없는 최저가로 제품을 구매할 경우 당장엔 이익이지만 결국 손해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2004년부터 '제한적 최저가 입찰'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정재엽 ㈜원일전선 전무는 "중소업체는 원자재가격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대기업이 무조건 납품단가를 인하하길 요구하기보다 적정한 가격을 쳐주면 품질과 생산 안정화에 더 많이 신경을 쓸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의 중요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성림은 효성의 '장기부품 공급인증'제도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업종 특성상 대부분의 물량이 일대일 주문생산방식인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주문량을 미리 알려주면 불필요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효성은 연초가 되면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모아 한해 예상 물량과 제품 수주 현황 등을 설명한다. 또 매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사보를 통해 공장의 세세한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주문 최종 확정도 최소 3개월 전에 이루어진다. 이 덕분에 ㈜성림은 매출도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192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220억원을 바라보게 됐다.

조재명 ㈜성림 이사는 "제품 생산 계획이나 부품 조달 상황 등을 미리 알게 된 덕분에 중소기업임에도 미래 선행투자나 장기 성장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됐다"며 "대기업과 함께 성장해 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한 공정거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대ㆍ중소기업 간 거래 방식에도 '공정'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은 무리한 최저가 입찰제로 발생할 수 있는 협력사 부실을 막기 위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거래 환경을 조성하고, 중소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미리 거래량과 금액 등을 알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KT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최저가 입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일물복수가'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무조건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를 선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KT가 내부적으로 산정한 목표가격 이내에만 들면 최저가와 관계 없이 입찰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최저가로 입찰하지 못한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더 낮추거나, 아예 입찰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규모와 능력에 맞는 적정 가격으로 입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일물복수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KT 내부에서는 더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싸게 계약을 하는 이 제도가 회사에 손해가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석채 KT 회장은 '구매비용을 너무 낮추면 앞으로 남고 뒤로는 유지보수 비용, 품질비용 등으로 오히려 손해가 된다'며 이 제도를 강하게 추진했다.

포스코도 최근 건설부문에만 적용되던 '최적가 낙찰' 제도를 용역부문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최저 가격으로 입찰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과 서비스 등도 종합적으로 평가해 가장 적정한 가격을 제시한 협력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아예 '발주예시'제도를 도입해 제품 구매 정보를 미리 중소기업에 알려주며 안정적 성장을 돕고 있다. 이 제도는 전기공사용 자재의 수요를 미리 예측해 2~3개월 전에 협력업체에 주문을 하고 안정적으로 제품을 납품 받는 것이다.

한전의 업무 진행 과정은 원래 소비자가 전기 개설 공사를 신청하면 그때 필요 부품을 납품업체에 발주해 공급 받는 구조였다. 이렇게 하면 한전의 재고 관리비용은 절약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주문량이 들쑥날쑥해 공장가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발주예시' 제도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환경을 배려한 제도라는 평가다. 이제 한전의 협력업체들은 여유를 갖고 안정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면서도 납품 기일은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STX처럼 일일이 원자재 가격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매주 주요 원자재 가격 데이터를 작성해 협력사에 제공해 주며 납품 단가 산정에 도遲?되도록 하거나, 하이닉스처럼 1차 협력사를 위한 납품단가연동 제도를 강화해 2차 협력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 사이에서 무조건 납품 가격을 낮추거나 원칙 없이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당장엔 이익이지만 결국 손해로 이어진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합리적 방식들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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