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에 걸친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의 선택은 표면상 라응찬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직무정지를 당한 신상훈 사장은 사실상 '무장해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승자 없는 결말'이라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무엇보다 이사회가 신 사장의 유ㆍ무죄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신한측이 요구했던 해임안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타협책로 그저 사태를 봉합한 데 불과하다는 것. 결국 공은 검찰 수사로 넘어갔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는 국면에서 신한의 내분사태는 이제 더 큰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승자인가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직무정지 결정보다 라 회장 측이 원했던 '해임안'이 상정되지 못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회는 이날 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일치된 의견을 모으자"며 논의를 시작했고 결정 후에는 "조직 안정을 위해 직무정지 결정을 내렸지만 이사회는 신 사장 혐의의 진위를 따질 수 없다" "이사회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10대 1'의 일방적 표결 결과도, '직무정지'라는 결론도, 이사들이 라 회장의 주장에 동의해 나온 결과는 아닌 셈이다.
어쨌든 이제 신한 사태의 열쇠는 검찰이 쥐게 됐다. 검찰 수사에서 신 사장의 배임ㆍ횡령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신 사장 퇴진으로 사태는 종결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라 회장과 이백순 행장마저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더구나 검찰은 이번 사건을 특별수사 부서에 배당해 신한 측의 고소 내용과는 별개로 수사를 확대할 수도 있음을 밝힌 상태. 특히 이날 라 회장 실명제 위반 혐의에 대한 고발 건 역시 같은 부서에 배당되면서 향후 검찰 수사는 신한 수뇌부와 조직 전체로까지 번질 수 밖에 없다. 한 금융계인사는 "누가 살고 누가 다칠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다"며 "자칫 초유의 금융스캔들로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긴 후유증
사태가 장기화되는 만큼 신한 측 피해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 조직의 분열과 직원들의 사기 저하. 그 동안 신한이 자랑하던 금융권 최고의 영업력은 이번 사태로 자긍심이 상처를 입으면서 추동력을 잃을 위기다. 한 직원은 "이미 부장급 이상에서는 암암리에 회장 측과 사장 측으로 편 가르기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미지 손실과 영업 측면의 악영향도 불가피해 보인다. 지주의 한 부장급 인사는 "앞으로 검찰 수사와 국정감사 등에서 갖가지 폭로가 난무하고 수시로 검찰 압수수색이 이뤄질 텐데 조직이 안정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일선에서는 VIP 고객 일부가 예금 인출 등 이탈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리더십 공백사태. 표면상 주도권을 쥐게 된 라 회장조차 앞으로 검찰 수사와 소송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식물 CEO' 처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장점이던 지배구조가 앞으로는 신한지주의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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