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꽹과리 소리와 태평소의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지고 징과 북이 장단을 맞추면서 한바탕 놀이가 시작됐다. 고운 한복 차림의 각시 탈이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시작하자 옆에 있던 스님 탈이 함께 춤을 추자며 치근댄다. 이때 구부정한 할미 탈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주책없이 끼어들면서 스님 탈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관람객들은 때로 '얼쑤~얼쑤~' 추임새도 넣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문화재 건강지킴이
11일 충북 음성군에 있는 한독의약박물관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공연이 펼쳐졌다. 다가오는 한가위를 맞아 평소 전통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우리나라 탈춤 중 가장 오래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농(豊農)을 기원하기 위한 연희(演戱)극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관람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초대받은 음성꽃동네 주민, 요셉의집 어린이, 홍복양로원 어르신 등 지역주민 200여명은 이날 탈춤도 배우고 하회탈도 직접 만들어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김영진(54) 한독약품 회장은 "추석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전통문화를 즐기게 되길 바라는 뜻에서 나눔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독약품은 지난해부터 사회공헌활동으로 중요무형문화재 기ㆍ예능 보유자(인간문화재)에게 무상 종합건강검진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살아있는 보물'인 인간문화재의 건강을 지켜 전통문화가 지속적으로 계승ㆍ발전되길 바라는 취지에서다. 만 50~75세 인간문화재 59명이 전국 11개 병원에서 생년에 따라 짝ㆍ홀수년에 종합검진을 받고 있다. 한독약품 관계자는 "전통문화 계승에 이바지하자는 취지에 병원들도 한 뜻으로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인간문화재 지원 정책 보완해야
하회별신굿탈놀이 인간문화재인 김춘택(60) 선생과 이상호(65) 선생이 전수 조교 및 이수자 등 20여명과 함께 풍자와 해학을 담은 전통 공연을 선사했다. 전수생으로 시작, 이수자와 전수 조교를 거쳐 96년과 2000년 각각 인간문화재로 선정된 두 사람은 30여년간 백정 과 할미 역할로 맥을 이어왔다.
마지막 공연자였던 인간문화재 고 이창희(95년 작고) 옹을 찾아 그림을 그려가며 배운 끝에 반세기 만에 전통공연의 복원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춘택 선생은 "1928년 고 이창희 옹의 마지막 공연에서 대가 끊어졌는데, 78년 전국민속공연대회 때부터 맥을 다시 이어오고 있다"며 "연간 30~40회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힘겹게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열악한 편이다. 월 100만원의 지원금과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에 전승비 명목으로 매달 지급되는 300만원이 전부다. 전통문화를 이어가며 생계도 꾸려나가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기ㆍ예능 보유자는 물론이고 이수자, 전수 조교 대부분이 생계형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춘택 선생은 "학교 강의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든가 하는 육성 정책이 있어야 전통문화 전승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내에는 125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에 188명의 기ㆍ예능 보유자(8월 말 기준)가 있다.
음성=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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