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햇살이 다사롭던 14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구청 앞. 사이클복에 헬멧 차림의 미국 동포 세 명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섰다. 지도에는 분홍색 형광펜으로 표시된 루트가 전남 여수까지 서해안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인생길 소풍 온 건데 재미있게 살다 가야죠. 자 힘차게 달려 보자고!"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 바람과 도로를 따라 고개를 내민 분홍 코스모스가 이들을 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풀과 나무와 논밭 들판이 펼쳐진 길에 접어들자 이들은 "캬~ 이 산 내음! 역시 고향 땅이 좋구나"라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서성걸(39ㆍ보잉사 엔지니어) 남해진(60ㆍ라이프 코치) 노기종(50ㆍ회계사)씨. 70,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가 타향살이를 해오던 이들이 고국의 풍경과 동포의 인심을 만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매일 70~100㎞씩 달려 평택-천안-논산-전주-지리산-보성-해남-진도-여수 루트를 11일간 주파하겠다는 게 그들의 계획이다.
미국 시애틀의 한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자전거로 서해안 일주를 계획한 것은 지난 해 4월, 자전거 동호회를 만들면서부터다. 매주 토요일마다 자전거를 타다 어느 날 서씨가 "한국에서 자전거 일주를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제가 경주~목포~제주(2005년), 설악산부터 부산까지 동해안(2008년) 일대를 자전거로 일주한 경험이 있어서 회원들과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었어요." 서씨는 지난 5월 회원 20여명에게 메일을 보내 참가자를 모집했고, 동참 의사를 밝힌 5명 중 일정을 못 맞춘 2명이 빠져 이들 3명만이 휴가를 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거였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다고 운을 떼자 서씨가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서"라며 대답했다. 1988년 고1때 이민간 그는 "그 사이 딱 4번 한국에 왔는데 그때마다 연락하는 친구가 있어요. 어제 오후 6시가 넘어 도착한 저를 위해 공항에 마중 나와 재워주고 오늘 여기까지 데려다 준 중학교 동창이죠. 미국에선 그런 친구를 아직까지도 못 만났어요."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부도난 뒤 98년 이민간 남씨는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면 늘 그리운 것 같아요. 예전에 '20대부터 70대까지 늘 똑같아. 한국에 가고 싶어'라고 말한 선배의 말이 이제 이해가 가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행 도중 지리산 등반과 외딴 섬 사람들과 생활해보기 등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풀 이벤트도 생각했지만 그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냐고 묻자 즉각 "사물놀이 공연 관람"(서성걸씨) "5일장 구경과 빈대떡 먹기"(노기종씨)라고 답했다. 남해진씨는 "Expect the unexpected!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일들이 기대돼요. 그게 진정한 고국의 선물이겠죠"라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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