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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3> 내 생애 최초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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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3> 내 생애 최초의 공연

입력
2010.09.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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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건 60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이야기, 까마득한 날의 사건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인생의 역사로는 유사(有史) 이전의 사건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가을 들면서 소위 학예회(學藝會)라는 것이 열리게 되었다. 이 경우 ‘학예’란 초등학생들의 ‘쇼 비지너스’ 같은 것이어서 강당의 무대 위에서 드라마를 펼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것은 꼬맹이들의 흥청대는, 신나는 놀이판이기도 했다.

한데 우리 반에서는 내게 역할이 주어졌다. 일약 천하의 스타가 된 것이다. 연극 대본이 주어졌다. 내가 주연이고 두 사람의 조연이 나를 보필(?) 하게 되어 있었다. 무대는 절이었다. 나이 많은 주지 스님과 동자승 둘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나는 그 중에서 동자승을 맡았다.

나는 약아 빠진, 약삭빠른 꾀돌이 꼬마 중이 되었다. 하지만 동료 동자승과 함께 평소에는 스님을 깎듯이 모셔 받드는 착한동이였다. 그러나 틈만 나면 스님 몰래 장난치고 노닥거리다가는 들켜서는 혼찌검을 당하곤 했다.

두 얼굴의 악동이었던 셈이다. 순한 데가 적은데다 짓궂기는 했지만 적어도 마음씨 고운 아이로는 더 바랄 게 없었다. 한편 내 동료인 다른 동자승은 어리석도록 착하고 순하기만 했다. 그래서는 늘 나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내가 시킨 대로만 따라 했다.

그러던 중에도 나는 스님이 혼자서 꿀을 먹어 대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벌은 우리 동자승 둘이 키워서는 벌꿀을 따기도 한 것인데도, 웬걸 악바리 주지 스님은 우리에겐 꿀병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이건 말이야 어른들에게는 약이지만 꼬마들에겐 독이야!”

꿀병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우리를 속이려 들었다. 그럴 적마다 나는 돌아서서 헛기침을 토하곤 했다.

한데도 하늘이, 아니 부처님이 도운 걸까? 기회가 주어졌다. 스님이 모처럼 먼 곳으로 바깥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떠나가 직전 우리를 불러다 앉히고는 늘 하던 말을 다시 또 되풀이 했다.

“그 독을 먹어선 안 돼! 큰일 나!”

그 순간 나는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혀를 날름댔다.

스님을 배웅하고 돌아 온 우리들은 스님이 숨기고 간 꿀병을 찾아내었다. 먹자고 드는 데 동료 동자승이 안 된다고 했다.

“먹고서 꿀이 준 것을 스님이 보게 되면 우리 혼난단 말이야!”

나는 다 수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평소 스님이 아끼던 꽃병을 부셔버리라고 했다. 마루 끝의 섬돌에다 그 깨진 꽃병을 이 보란 듯이 차려 놓았다. 그리곤 둘이서 마구 꿀을 먹어댔다. 처음엔 멈칫대던 친구 녀석도 허겁지겁 먹어댔다. 우리들은 뺨과 턱에 꿀 칠을 해가면서 맛나게, 신나게 먹어댔다. 빨리 먹기, 많이 먹기 내기라도 하듯이 핥아댔다.

그리고는 텅텅 빈 꿀병을 일부러 옆에 두고는 길게 누웠다. 실컷 맛나게 먹고는 꿀에 취한 탓일까? 우리 두 녀석은 이내 낮잠에 빠져 들었다.

공교롭게 그럴 때, 스님이 돌아 왔다. 우리를 깨우고는 빈 꿀병을 가리키면서 노발대발했다.

“녀석들 그렇게 일렀는데도 이 꿀을 아니, 독을 먹어 치다니, 그것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서!”

두 발로 마루를 굴리면서 거짓말쟁이는 야단을 쳐댔다. 악을 썼다. 부스스 눈을 비비면서 내가 시치미 뚝딱 따고는 사연을 털어 놓았다.

“스님 가시고 난 뒤에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그만 꽃병을 깨뜨렸지 뭡니까. 스님께서 그토록 귀하게 아끼시던 보물을 박살냈지 뭡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죽기로 마음먹고는 저 독을 먹게 된 것입니다.”

순간 강당을 메운 관중이 모두 박장대소! 와!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머리 마룻바닥에 처박고는 웅크린 스님을 뒤로 하고는 동자 승 둘은 펄떡 일어나서는 큰 절로 관중의 환호에 응답했다. 그래서 박수 또 박수!

이것이 나의 첫 무대였다. 당당히 스타덤에 올라 선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하필이면 ‘진지한 코미디’였다는 것에 지금으로서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누군가의 부정이며 악덕을 두고는 풍자 가득, 난도질을 하되, 그나마 익살이 넘치도록 해대는 것이 이른바, ‘진지한 희극’의 본령이란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처 철도 들기 전, 어리디 어린 꼬맹이로 그와 같은 코미디의 진수를 연출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보람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의 큰 부담이 되어 온 게 사실이다.

세상의 궂은 꼴, 흉한 꼴 대하기를 그렇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나의 첫 공연은 지금도 가슴에 사무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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