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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염된 먹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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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염된 먹물들

입력
2010.09.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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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라는 말이 있다. 양념 반찬이 되고 모양도 낼 수 있어 음식 위에 얹어 놓는데 '고명'과 유사한 말이다(아들 많은 집의 외동딸을 그래서 고명딸이라 불렀다). 고명이라면 실고추나 대추, 삶은 계란 등을 생각하고, 웃기라고 하면 아무래도 문어가 떠오르는 것은 의 기억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문어를 자라가 꾸짖는다. "사람들이 너를 보면 영락없이 잡아다가 혼인잔치 환갑잔치 크고큰상 어물접시 웃기거리 긴요하고…." 즐거운 잔칫상만 아니라 엄숙한 젯상에도 '뼈대 없는 동물' 중 유일하게 오를 수 있는 놈이다.

■ 그 놈이 문어(文魚)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고 그렇게 대접을 받게 된 연유는 먹물 때문이었을 터이다. 옛 유생들이 보기에 문방사우(文房四友ㆍ붓 먹 종이 벼루) 중 하나를 지니고 있으니 동료처럼 여겼고, 실제 해안가 선비들은 놈들의 먹물로 글을 쓰기도 했다. 문어를 문성장군(文盛將軍)이라 높이기도 하고 스스로 먹물이라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먹물은 먹물일 뿐이어서 멜라닌 색소가 주성분이며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연막효과가 거의 전부로 알려져 있었다. 주변이 암흑이어서 먹물이 소용없는 깊은 바닷속 문어들은 거꾸로 발광물질을 지니고 다닌다.

■ 먹물을 갖고 있는 동물은 문어와 그의 친척인 낙지 쭈꾸미, 인척 격인 오징어 꼴뚜기 등이다. 고단백ㆍ저지방의 하얀 몸통은 아미노산까지 많아 인기가 높지만 먹물 때문에 요리하기에 성가신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이 먹물이 항암작용을 한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된 후 '암의 예방ㆍ치료제'로 각광을 받았고, 몸통보다 먹물이 수확의 목적이 되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먹물라면 먹물쿠키 먹물피자 먹물칩 등이 범람하면서 먹물신드롬을 일으켰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 오징어 수확기엔 폐기물이었던 먹물을 별도로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 시판 중인 문어 낙지 등의 머리와 내장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무더기로 검출됐다고 서울시가 발표했다. 카드뮴은 전립선암이나 이타이이타이병 등을 유발하는 위험한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 부분에서 중금속이 발견됐다면 먹물은 더 해롭다는 얘기고, 먹물 속의 중금속이 머리를 오염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주엔 추석이고 곧 본격적인 수확기가 다가오는데 모두가 걱정이다. 암을 예방ㆍ치료한다는 먹물 속에 암을 유발하는 중금속이 들어있다니 환경재앙이 참으로 무섭다. 아무리 훌륭한 먹물이라도 주변에 의해 오염됐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해악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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