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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글로벌 금융위기 향한 스크린의 유쾌한 복수

입력
2010.09.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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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악을 실행할 자금 대출을 위해 비밀 은행을 찾는다. 등이 꺾인 사람 모양 조각 위에 건물 기둥을 세운 은행의 이름은 '순악질 은행'(Bank Of Evil). 무시무시한 이름 아래 조그만 글씨가 이 은행의 전신을 소개하고 있다.

'옛 리먼 브라더스'(Formerly Lehman Brothers). 16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슈퍼 배드'에서 가장 눈이 번쩍 뜨인 장면이었다. 딱 2년 전인 2008년 9월 14일 파산보호신청을 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쓰나미를 일으킨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그렇게 악의 상징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고객의 계좌 잔고는 바닥을 향해도 금융기관 직원들은 보너스 잔치로 날을 샜던 월가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미국인들의 증오가 읽히는 풍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할리우드의 제작 행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비용 부담에 눌려 대형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무산됐고, 싸게 만들 수 있고 흥행 위험부담이 작은 속편과 리메이크 영화들이 쏟아졌다. 올 여름 '인셉션'과 '토이스토리3'를 빼면 블록버스터라 부를 만한 대작이 없었던 점도 금융위기가 드리운 그림자다.

역설적으로 금융위기는 할리우드에 좋은 소재도 던져줬다. 월가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어둠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다. '볼링 포 콜럼바인'과 '화씨 911' 등을 연출한 미국 영화계의 이단아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 자본주의에 냉소를 보내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를 지난해 선보였다. "'러브 스토리'라는 부제는 '자본주의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영화 '러브 스토리'는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라는 대사로 유명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일 것"(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매운 비판을 가하는 영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금융위기 덕분에 '월스트리트'(1987)의 속편인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10월21일 개봉)를 13년 만에 내놓았다. 전편에서 오직 돈을 좇아 움직이는 냉혈한으로 묘사되던 인물 게코(마이클 더글러스)의 일갈이 아이러니하다. "탐욕이란 좋은 것이야. 이젠 그것이 합법화 되었더군." 영화는 각종 작전과 협잡으로 얼룩진 월가의 이면을 까발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불합리한 대책을 고발한다. 동료를 자살로 몬 작전세력에 대한 무어(샤이아 라보프)의 복수를 통해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냉혹하고 팍팍한 현실은 그렇게 스크린을 거쳐 신랄한 비판과 풍성한 풍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금융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암울한 소식 속에서도 그나마 이런 영화가 있어 위안을 얻는지도 모른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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