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나라 밖에 있었거나 잠시 뉴스와 담 쌓고 지냈던 사람은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환생한 걸로 착각할 법하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차명계좌 유무가 뜬금없이 논란을 빚더니 그가 생전에 토해냈던 말들이 우리 사회에 쟁쟁하게 울려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반칙이 판을 치고 뒷거래나 특권이 우리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그런 세상 이제 끝냅시다. 선량하게 살고자 하나 반칙하지 않으면 경쟁할 수 없는 잘못된 제도들을 이제 다 뜯어고칩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정의롭게 사는 시민정신이 없을 때 아무 것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인 경쟁력은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떳떳한 시민, 건강한 시민정신에서 비롯됩니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듭시다."
인센티브로 선진화 성장통 극복
"있는 사람이 더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는 그런 복지,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기회를 균등하게 주자는 것이다.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없는 집 아이는 교육 못 받고 있는 집 아이만 교육받을 수 있다면, 없는 집 아이는 대를 이어 그렇게 된다. 돈 있는 사람은 치료 받고, 돈 없는 사람은 치료를 못 받으면 불공정하다. 공정한 기준,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입장에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지도층 특히 기득권자는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기준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앞의 얘기는 노 전 대통령이 기회가 날 때마다 설파했던 '사람 사는 세상' 혹은 시민민주주의론의 골자이고 뒷 얘기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여기저기서 전파하는 공정사회 혹은 선진민주주의론의 핵심이다. 진보정부 10년의 공과를 싸잡아 매도하며 집권한 보수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사회 모든 부문의 반칙과 특권을 몰아내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차등의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낯설다. 진보진영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보수층은 의도를 불온하게 여길 만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부르는 새 노래가 어색하고 불편해도 한나라당 등 기득권세력도 거기에 장단을 맞춰 반주를 해야 하는 상황, 급기야 대기업 총수들이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을 넘어 '동반성장'을 입에 담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실질적 민주화에 기초한 선진화 단계로 접어든 사실을 잘 보여준다. 반칙과 특권 대신 공정과 공유, 중앙집중과 승자독식 대신 균형발전과 동반성장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원론적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해도 각론의 내용과 추진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공정사회는 공허한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반칙과 특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적개심은 되레 커진다. 반면 사안마다 공정과 서민의 의미를 담으려고 할 경우 정책간 충돌이 벌어져 정부의 운신이 제한되는 점도 잘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정부가 역점을 둘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정성이 뿌리 내리도록 하는 다양한 인센티브(incentiveㆍ유인)를 설계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공정의 온상을 도려내는 것이다.
으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는 부정와 부패, 범죄를 기본적인 경제행위라고 했다.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반칙과 편법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빗은 정부가 어떤 일을 하게, 혹은 못하게 하는 적절한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인센티브 도식을 만들면 유혹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대ㆍ중소기업 불공정거래 문제의 경우 기업 고발절차를 용이하게 하고 벌칙을 강화하며 불공정지수를 만들어 공개하는 식이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돈과 명예와 권력을 함께 갖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자리잡은 것도 한 예다.
닫힌조직 특권해체가 성공 좌우
더욱 중요한 것은 정보를 독점하며 수십 년간 특혜와 특권을 누려온 우리 사회의 닫힌 조직을 개혁하는 일이다. 기수로 또는 동류의식으로 위아래를 얽어 매며 사회를 지배해온 이들 집단의 저항을 뚫는 작업은 난공사 중의 난공사다. 열린 사회의 적을 방치하고는 개방과 공유, 투명성을 먹고 사는 공정이 설 곳은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