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풀독의 이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풀독의 이유

입력
2010.09.13 12:05
0 0

풀이 식물이라 가벼이 여기지 마시라. 풀에도 독이 있다. 은현리 살면서 '풀독'의 고통으로 여러 번 피부과를 다녀야 했다. 의사도 풀독의 정확한 감염 경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풀에 스쳐 피부 곳곳에 붉은 반점이 솟아오르고 간지럽다고 하면 풀독으로 진단했다. 풀독은 시골생활의 통과의례다.

흔히 녹색, 꿈꾸는 전원의 Green은 상상과는 다르다. 녹색은 싸워야 하는 현장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애창했던 톰 존스의 노래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낭만이었지 현실이 아니다. 녹색 속에서도 치열한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존재한다.

녹색의 풀도 날카로운 잎으로 사람을 공격하고 몸의 거친 가시로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다. 자신을 방어하는 힘이 있어 풀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생명이니 존중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녹색을 평화와 휴식으로 상상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당신도 풀독에 옮아 고생해본다면 풀도 만만치않은 힘을 가진 '푸른 짐승'이라는 것을 쉽게 알 것이다.

어제는 마당의 풀을 정리하려는데 풀 속에서 꽤 많은 벌레들이 튀어나왔다. 풀은 내 낫질에 억세게 항거했다. 나와 내 친구 벌레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푸른 경고였다. 그 경고를 무시하면 십중팔구 풀독이 옮는다. 가을이 깊어져 풀이 순해질 때까지 잠시 풀을 놓아두기로 했다. 사람이 풀과 협상을 한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