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 최범영(52ㆍ사진) 선임연구원은 1984년부터 국내외를 답사하며 지질을 분석하고 광물자원의 매장 유무를 조사해온 지질학자다. 대한지질학회 학술상(2002), 과학기술총연합회 논문상(2007) 등을 수상한 베테랑이다. 그런데 그는 아마추어 이상의 언어학 실력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기도 하다. 최씨가 최근 낸 (종려나무 발행)는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관계, 신라어와 고려어 등 고어를 소개하는 언어 에세이집이다.
유신 말기 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잇따른 학내 시위로 학교가 어수선하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조선 영조 때 발간된 만주어사전 '동문유해(同文類解)'를 접한 뒤 중세 국어에 빠져들었고, 내친 김에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지질학 과목 점수보다 국문과 과목 점수가 더 좋았다"는 그에게 1년에 절반 이상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중국, 몽골을 돌아다녀야 하는 자신의 일은 언어학을 공부하는 데 최고의 자산이 됐다.
그는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 일본어를 단순 비교해보면 같은 것이 거의 없으나 그 사이에 방언을 채워 넣으면 서로 이어져 말의 무늬를 이루며 변화해 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그의 주장을 입증해줄 만한 사례가 풍부하다. 예를 들면 '사랑하다'라는 의미의 몽골어 '고이'는 중세 한국어 '괴다'(寵)와 비슷하고, 현대 일본어 '고이'는 '사랑'(戀)이라는 뜻이다. '마후라'의 경우 사전에는 영어 '머플러'가 일본을 거쳐 들어온 말로 소개돼 있다. 그러나 최씨는 같은 뜻으로 충청 방언 '마구라', 조선시대에는 '마흐래'가 있었으며 만주어로는'마할라', 몽골어는 '말라가이'가 쓰인다며 이 언어들의 높은 상관성을 주장한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알타이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그가 펼치는 논의는 흥미롭다. '아침밥'을 뜻하는 경기 방언 '아치개', '모두, 모조리'라는 의미의 충청ㆍ경상 방언 '야지리' 등 잊혀져 가는 각 지역의 방언 소개도 반갑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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